창살 아래 그대가 묶였던제1266호5월이었고, 햇살 좋은 토요일 오후였다. 인천 부평구청 옆 신트리공원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박노해에 앞서 노동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1984)를 펴낸 박영근 시인이 머리를 식힐 겸 자주 거닐었다던 곳이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거기 시비 하나를 세워 해마...
‘존버’는 승리한다제1266호“존버는 승리한다.” 림 킴이란 이름으로 4년 만에 돌아온 가수 김예림의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보다 들은 말이다. 존버? 외국 사람이야? 찾아보니 ‘존나 버티다’를 줄인 말이다. 자기 자신으로 버티는 그녀 이게 누구야? 대중이 알고 있던 김예림을 싹 다 폐기처분해버렸다. 그는 자기 ...
세상을 바꾼 범고래제1266호베루피외르뒤르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외진 지역 중 하나다. 검푸른 바다가 초록 이끼 낀 바위를 희미하게 쓸고 지나가면, 대서양청어 떼가 일으키는 검은 그림자가 겨울의 피오르(협만)를 뒤덮는다. 그리고 그 끝에 대서양청어를 따라온 범고래가 있다. 1983년 11월 범고래 한 마리가 이곳에서 잡혔다. 거대...
작은오빠 따라 후다닭제1266호다수 집으로 이사하여 며칠이 되지 않아 일어난 일입니다. 건넛집 원내네 수탉이 우리 집까지 건너왔습니다. 원내네 수탉은 기세등등하게 우리 집 수탉을 후달궈 쫓아버렸습니다. 원내네 수탉은 날개를 땅에 끌릴 정도로 낮게 펴고 고고고… 꼭꼭꼭… 하며 우리 집 암탉을 차지하고 놉니다. “닭 먹이게 소고기 좀 ...
혼자 만들고 혼자 배달하고 혼자 밥 먹고제1266호2035년. 아침잠에서 깬 나식도락(26)씨는 ‘내가 젤로 빨라’ 뉴스 인플루언서 채널을 열었다. ‘지구에 이런 일이’ 코너에 소개된 기사를 보고 박장대소했다. ‘사람과 직접 얼굴 마주 보고 밥 먹은 기이한 이… 복고 트렌드라고 주장해!’ 타인과 같이 밥 먹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가 여섯 살 때 ...
‘장학썬’은 여성을 거래했다제1265호요즘 ‘장학썬’이라는 말이 있다.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클럽 버닝썬 사건에서 한 자씩 따 만든 신조어다. 이 세 사건은 연예계, 법조계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상품처럼 주고받는 문화가 얼마나 일반적인지 보여준다. 가수 정준영은 친구들과 모의해 여성에게 약물을 투여한 뒤 성폭행하고 그 영상을 ...
일반화된 편견 제1265호두 경찰이 취객을 진압하는 과정을 찍은 이른바 ‘서울 대림동 여경’ 동영상에서 논란이 된 장면은 화면이 꺼지고 음성만 나오는 대목이다. 한 남성이 “(수갑) 채워요?”라고 묻고 여성 경찰이 “채워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녹음된 이 부분은 여성 경찰이 제 역할을 못하는 동안 시민이 취객을 제압한 것으로 오인됐…
뻔한 것을 깨부수고 지루한 세계를 찢고제1265호“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인 우리 송강호 배우님의 멘트를 꼭 저는 이 자리에서 듣고 싶습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수상 소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함께 무대에 오른 배우 송강호를 마이크 앞으로 소환했다. 그도 그럴 것이...
SNS는 잠든 ‘꼴통’을 깨운다제1265호<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글항아리 펴냄). 제목이 혹하게 한다. 밤낮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내가 연결돼 있음’에 안도하는 세상에서 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끊어야 하는 걸까? 저자 이력도 혹하게 한다. 지은이 ...
어리석은 남자들아, 불 끄고 나가줄래 제1265호뱃살을 좀더 빼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속옷부터 쫙 갖춰 입고 다니고 싶다. 원하는 곳 어디서든 탈의해도 가뿐한 상태를 좋아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입고 벗는 과정의 즐거움은 마치 간략한 의식을 나를 위해 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음에 드는 다른 관객을 두는 것도 때로 즐겁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