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이 열린다 ‘광’이 난다 제1268호“띵동 띵동-.” 초인종이 울린다. 그리고 한 여자의 얼굴이 인터폰 모니터 위로 떠오른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찾아온 “계획에 없던” 방문자는 바로 이 집의 전 관리자이자 가사도우미였던 문광(이정은)이다. 비에 홀딱 젖은 몰골, 여기저기 맞고 멍든 흔적, 삐뚤어진 안경,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눈빛...
집 지키는 뱀 이사시키기제1268호어두니골은 살기가 좋았습니다. 뒷동산이 가까워서 나물을 뜯어 나르기도 쉬웠습니다. 집 앞으로 한 500m쯤만 가면 맑고 시원한 강물이 흘렀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꽃이 심고 가꾼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도 곱게 무리지어 피는지 신기했습니다. 밤나무 밑으로 집 주위엔 수리딸기 멍석딸기 나무딸기 고무딸기가 ...
여기 새로 생기는 땅도 있다 제1268호‘어디에도 없는 곳으로부터 온 소식’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달뜨게 한다. 다소 전투적인 명령어이지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역시 흥분감을 자아낸다. <지도에 없는 마을>(북트리거 펴냄)의 저자인 지리학자 앨러스테어 보네트는 새로 생겨난 땅, 무시당하는 장소 등 ‘지도에 없는 마을’ 3...
모름지기 축제는 이래야지제1268호나는 록을 들으며 자랐다. 음악축제 하면 당연히 록페스티벌이다. 멀리까지 차를 타고 가서, 주차하고 한참을 또 걸어,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는 그곳에서 펄쩍펄쩍 뛰는 게 좋았다. 신발이 진흙에 파묻혀 벗겨지고, 속옷까지 흠뻑 젖어, 모든 걸 내려놓을 지경까지 망가지는 순간의 그 짜릿한 쾌감은 경험해보...
알기 위한 노력제1268호지난 6월1일 나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해 역대 최대 차량이라는 11대의 트럭과 함께 4.5㎞를 행진했다. 광장을 나서자 반대 집회 쪽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외침은 차량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묻혀버렸다. 누군가들이 혐오발언을 퍼붓는 동…
서울의 전라도 사람, 중국의 한궈런제1268호내 아들은 조선족이다.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중국 한족이지만, 아들은 조선족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웃픈’ 일이다. 아들이 조선족 된 사연 중국에서는 출생 직후, 우리나라의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에 해당하는 ‘호구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호구본이 있어야 학교도 다니고 여권...
‘김단야 기자’가 상하이에 특파된 까닭은제1268호김단야도 합법 신분을 가진 때가 있었다. 1924~25년 두 해가 그랬다. 24~25살 젊은 때였다. 그땐 공공연하게 식민지 수도 경성의 대로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다. 한평생 혁명운동에 몸담은 까닭에 비합법 영역에서 남의 이목을 피해 다니거나 외국 여러 나라로 망명했던 그로서는 예외적인 시절이었...
<그럼, 동물이 되어보자> 외 신간안내제1267호그럼, 동물이 되어보자 찰스 포스터 지음, 정서진 옮김, 눌와 펴냄, 1만5800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의학과 법학을 전공한 저자가 작정하고 오소리·여우 등이 되어 자연을 관찰한다. ‘종’의 벽을 넘어 공감하고 싶어서다. 2016년 재미난 과학 실험에 주는 ...
교양의 냄새제1267호학교가 파하자 지혜는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가봐야 심심할 게 뻔했으니 나는 좋았다. 막 찍어낸 벽돌이 아니라 비바람에 풍화돼 분홍빛이 도는 벽면, 지혜의 집은 지붕 위까지 담쟁이가 무성했다. 마당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단단히 박혔고 불투명 창문 사이로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오래된 악행을 말하다제1267호‘권리장전 2019 원조적폐’가 6월5일부터 연우소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축제는 4년째 지속됐다. 2016년의 답답하고 폐쇄적인 상황 속에서 벗어나려 알음알음 모여들었던 연극인들의, 하나의 자리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무력한 개인에서 탈출하려는 절박함이 그런 자리를 만든 제일 큰 동력이 아니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