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나도 자라고 있단다 제1272호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것은 가슴 아픈 행위다. 나는 멀리 있는 당신의 고된 하루를 떠올리며 시름에 잠기고 내 곁에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때로 서글퍼진다. 잠자는 아이들이 항상 평온한 것만은 아니다. 그네들도 악몽에 시달려서 온몸을 뒤틀기도 하고 그럴 때면 나는 아직 여물지 않은 몸을 힘껏...
권력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제1272호tvN 월화드라마 가 7월1일부터 방영 중이다. 이 드라마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국민 지지에서 나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실감 나게 보여준다.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를 리메이크했다. 드라마는 첫 화부터 충격적이다.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과 ...
교양은 목소리에 깃든다 제1271호“‘교양’은 지성뿐 아니라 몸에도 깃든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와 몸의 교양>(도서출판 유유)은 이 믿음 위에 쓰인 우아함의 교본이다. 말하기 훈련을 안내하는 책이지만 스피치 기술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한 단련법’(부제)을 통해 소통의 ...
복날의 개제1271호여름이 되면 개 식용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되풀이된다. 동물학적으로 모든 개는 동일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개를 두 종류로 나눈다. 외국 품종은 반려견이고, 진돗개·풍산개 같은 토종과 ‘믹스견’이라는 잡종은 식용견인 것이다. 개 식용을 옹호하는 이들은 “소, 돼지, 닭은?”이라는 말로 반감을 드러내거…
<밀양을 듣다> 외 신간안내제1271호밀양을 듣다 김영희 외 지음, 김영희 기획·엮음, 오월의봄 펴냄, 3만2천원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 ‘밀양 할매’들은 한국에서 ‘탈원전’을 사회적 이슈로 만든 분들이지만, 공론화위원회에서 배제됐다. 담론의 장에서 나올 수 없었던 밀양 할매, 연구자, 활동가의 ‘목소리’를 650여 쪽에 담았...
책방을 지우고 책방을 그리다제1271호매주 주말이면 서점 아닌 서점이 있다.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책방 ‘비앤드비’(B&B)는 서점 내부에 커다란 가림막을 친다. 정오에 문을 열어 밤 11시에 마치는 이곳의 영업시간을 떠올리면, 말 그대로 ‘반나절 휴점’인 셈이다. 가림막 외의 공간에는 최소한의...
자식과 싸우느니 자신과 싸우자제1271호10년 전이다. 뚱땡이로 마흔 살을 맞기 싫어 근력운동을 겸한 체중 감량을 했다. 지금처럼 유투브 속 ‘무서운 언니들’이 없을 때라 몇 가지 아는 동작을 반복하는 정도였지만 제법 효과는 있었다. 부들거리며 플랭크를 하는 나를 보고 네 살 된 아이가 놀라 물었다. “엄마, 뭐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
날 더워지면 생각나는 콩국수제1271호날 더워지면 생각나는 맛이 있어요. 냉면이오? 아니에요.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데 밭일하고 오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요. 몸이 축 처지고 갈증이 날 때 이 콩국수만 한 게 없어요. 그 진하고 고소한 맛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오래 끓인 사골 국물로 추위를 잊는다면, 뽀얀 콩국...
목말라도 즐거워 불편해도 재밌어제1271호6월 마지막 주가 되면 영국 남서부 지방 워디팜으로 전세계에서 웬만한 도시 인구에 해당하는 2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지난해 출연진이 발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 빠르게 블라인드 티켓을 예매 오픈 1시간 안에 선점한 사람들, 이른바 ‘금손’들이다. 워디팜은 1년 365일 중 단 일주일 동안만 음악...
사과도 실력이다제1269호나는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좋다. 특히 호혜평등을 유지해야 하는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동료, 이웃, 친구, 피붙이… 음,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거의 다 해당하네. 그중 언행에 유독 민감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상사 아닐까. 잘못을 들킨 상사의 태도를 분류해본 적이 있다. A급 멋진 상사: 깔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