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반달 돌담 안에는 장마 때면 아주 맑고 투명한 샘물이 졸졸졸 흐릅니다. 집 뒤는 방에서 뜨럭(뜰)을 한 발쯤 되게 돌담을 쌓고 진흙으로 잘 다져놓았습니다. 큰 대추나무 밑에서부터 뜨럭 밑으로는 땅을 한 80㎝쯤 깊이 도랑을 파서 헛간 뒤로 해서 강으로 흘러가게 해놓았습니다. 담 밑 밭과는 어른이 껑충 건너뛸 만큼의 거리입니다. 온 집 주위가 다 물바다지만 집 뒤뜨럭부터 마당은 물이 나지 않는 아주 명당 터입니다. 할아버지가 집터를 잡을 적에 석 달 열흘 장마에 눈여겨보아 물이 나지 않는 터를 골라 집을 지었답니다. 담을 헐고 나니 아주 큰 굴이 나타나 어느 해 천둥 번개가 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칠흑같이 어두운 밤 뒤란에서 와르르르~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무서운 소리가 났습니다. 날이 밝자 세상을 삼킬 것 같던 비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맑고 고운 햇살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뒷문을 열고 보니 돌담이 무너져 작은 간장독 하나가 깨져 있었습니다. 간장이 뒤집어지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하여 장독간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바쁘니 담을 금방 손질할 수 없어서 장독 가까운 데만 치웠습니다. 동생은 무너진 담 위에서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쉬는 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번개같이 뛰어서 담 위에서 놀고 있는 동생을 안고 담 밖으로 달려갔습니다. 깜짝 놀라 보니 큰 뱀이 고야나무 밑에서 혀를 너불너불하며 동생 쪽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할머니가 “아범아 담이 헐린 참에 집지킴이를 이사를 시키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재주도 좋은 소리를 하시네요. 무슨 수로 뱀을 이사를 시켜요?” 하십니다. 할머니는 돌담을 좋아하는 놈이 담을 헐어 옮기면 자연히 담을 따라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꾼을 서너 명 불러 돌담을 헐어 큰 밤나무 밑에다 쌓았습니다. 담을 다 헐고 나니 정말로 고야나무 밑 쪽으로 아주 큰 굴이 뚫려 있었습니다. 며칠 뒤 굴은 흙으로 메꾸어버렸습니다. 돌담이 있던 자리에는 솔갑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호박 덩굴도 올리고 오이 덩굴도 올렸습니다. 돌담 위에 흙을 져다 덮었습니다. 꽤 쓸 만한 마당이 생겼습니다. 여름에는 자리를 깔고 쉴 참에 쉬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쉬어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통굽살이(소꿉놀이) 하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열세 살 때의 어느 날입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이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날 밤나무 밑 작은 마당 돌담에서 집지킴이가 나왔습니다. 커다란 머리통은 손목을 꺾어 든 것같이 생겼고, 눈은 꼭 엄지와 검지를 붙여 든 것같이 생겼습니다. 아버지 두 손으로 잡을 만큼 커다란 몸통은 갈색에 흰 줄이 보이는 듯 마는 듯 가 있습니다. 놈이 꼬리를 땅에 붙이고 일어서서 혀를 너불너불하며 그 큰 눈으로 사방을 살펴봅니다. 멀리서 어른들과 함께 구경했습니다. 길이가 2m도 넘을 것 같습니다. 정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려나 했는데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돌담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너무도 크고 끔찍한 뱀인데 집지킴이라 하니 별로 무섭지 않았습니다. 집지킴이는 1년에 한 번 어른들 눈에만 띄는 것인데 너도 어른이 되었나보다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어른이 되었나보다” 다수리로 이사할 때까지 교통도 불편하고 뱀도 많은 어두니골에서 잘 살고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집지킴이가 우리 집을 잘 지켜주어서 그렇다고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큰오빠는 무슨 뱀이 집을 지키느냐고 그놈이 거기 살기 좋으니 살았을 뿐이라고 하면 할머니는 늘 그런 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전순예 <강원도의 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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