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과 지루함의 땅에 머물지 않는다 제1263호“여행이 영어로 뭐지?” 최근 한국의 한 광고에 등장한 배우 틸다 스윈턴은 이렇게 묻는다. 사실 영어를 몰라도 답을 몰라도 상관없다. 핵심은 저토록 위풍당당한 존재와 함께라면 지구 반대편이든 지구 바깥이든 어디로든 당장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절대로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다...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당신에게제1263호‘tl:dr’ 암호 같은 이 단어는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too long; didn’t read’(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다)의 줄임말로, 필독서만 읽거나 심지어 그마저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 읽는 뇌>...
그 엄마의 딸제1263호아이를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거나 나이 들수록 지혜로워진다는 말은 순 뻥이다. 나를 봐도 팔순인 내 엄마를 봐도 그렇다. 비슷한 맥락에서 엄마와 딸이 친구 같다거나 단짝이라는 말도 나는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 세대도 경험도 다른 모녀간에 그럴 수는 없다. 군수댁 손녀딸인 그이는 엄마 하라는 대로 하고 ...
사람의 임종을 예견한 고양이제1263호고양이가 인간의 친구라고 하기에는 우린 떨어진 지 너무 오래됐다. 우리가 침팬지와 떨어진 지는 대략 500만 년 전, 오랑우탄과 떨어진 지는 1400만 년 전, 고양이와 떨어진 지는 85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우리와 고양이의 공통 조상이 있고 그 조상은 로라시아테리아라는 주장이 있다. 화석조차...
“유죄 50%·무죄 50%, 유죄인가 무죄인가”제1263호“싫어요.” 권남우(박형식)는 “무죄냐 유죄냐”를 결정하는 배심원 회의 자리에서 ‘다수의 적’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유죄’라고 했는데 권남우는 “모르겠다”고 한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이 우물쭈물하는 권남우를 다그치자 결국 그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싫어요”는 삐져서 하는 말과, 신념에 ...
휴머니스트제1262호예전에 남자 지인이 “나는 페미니즘을 지향하지 않는다. 휴머니즘을 지향한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의아하긴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남자에게 비슷한 말을 또 들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다.” 연령, 상황, 조건이 전혀 다른 두 남성이 공통적으로 자신을 휴머니스트로 …
이야기는 인간을 구원한다제1262호1990년대에 10~20대를 보낸 이들에게 왕가위(왕자웨이)와 무라카미 하루키, 밀란 쿤데라는 그들의 젊음에 각인된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다. 당시 내가 가장 열광했던 이는 쿤데라였는데, 나이 들어서 애틋하게 떠올리는 이는 오히려 왕가위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하루키와 쿤데라는 지금도 가끔 ...
천하의 해적에게도 육아는 힘들다제1262호“아디펜치! 아디펜치 볼래!” 요즘 부쩍 말이 는 첫째님의 외침. 하지만 ‘아디펜치’가 뭐지? ‘아기팬티’를 보여달라는 말인가? 설마, 아기는 아직 기저귀를 차는데. 한참 고민하고 알았다. ‘아델리펭귄’을 보고 싶다는 뜻. <바다탐험대 옥토넛>(이하 <옥토넛>) ...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외 신간안내제1262호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박태균 지음, 메디치 펴냄, 1만6천원 사회학자와 역사학자가 만나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논쟁을 짚었다. 분단 원인부터 교육 평준화와 광주항쟁, 수저계급론까지 한국 사회가 어떤 논쟁을 거쳐 어떤 역사를 선택했는지 조명한다. ...
잔나비의 전설이 시작됐다제1262호내가 잔나비라는 밴드를 알게 된 건 2016년이다. 그해 여름 나온 정규 1집 《몽키 호텔》을 접하면서다. 처음 밴드 이름을 들었을 땐 잔나비처럼 잔망스럽고 경쾌 발랄한 음악을 떠올렸다. 하지만 타이틀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