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루빈의 ‘여성 거래’ 등 주요 논문을 엮은 책 <일탈>. 현실문화 제공
국제결혼지원금은 지참금과 뭐가 다른가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사회에서 친족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뜻했다. 친족은 성적 행위 같은 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정치·축제 같은 공적 영역을 조직했다. 생산과 분배, 적대와 연대, 종교의식과 사회의식이 모두 친족 구조 안에서 일어났다. 처음에 친족 구조가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한 것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였다. 레비스트로스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교환 파트너들 사이에서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거나 확고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모스의 증여론을 바탕으로, 결혼이 이 선물 증여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임을 지적한다. 그는 친족 체계의 본질을 남자들 사이의 여성 거래, 즉 여성을 증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여성을 선물로 주는 것은 말이나 소를 주는 것과는 다르다. 여성을 선물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 친족은 남성과 여성의 위치와 권리 등 권력관계를 만들어낸다. 루빈은 이러한 여성의 증여가 친족 구조를 형성하고 가부장제 자본주의를 세우는 원리가 된다고 지적한다. 근친상간과 동성애 금지는 여성 교환이 제대로 되도록 보장해주는 구실을 한다. 여자 형제나 딸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야 하기에, 여성은 자기 친족 밖에서 결혼 대상을 찾아야 하고, 다른 여성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여성은 결혼으로 증여되고, 전쟁에서 전리품이 되고, 호의 표시로 장식된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넘겨주는 관습은 이런 교환의 문화적 흔적이다. 이런 선물과 교환은 참여자들에게 특별한 신뢰관계, 연대, 상호 원조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남톡방’(남성들만 속한 단체대화방)에서는 동료와 친구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품평하고 교환한다. 대학에서는 신입생 외모를 품평하고 회사에서는 불법촬영물을 공유한다. 취미생활을 위한 카메라 동호회에서는 여성 모델을 데려다 야한 의상과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여성을 선물하고 교환하는 문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자원을 획득하며 공동체 유대를 깊게 한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는 ‘농촌 총각’을 위해 국제결혼지원금을 지급해왔다. 최근 경상남도는 1인당 180만원을 부담하던 예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중단 결정으로 오히려 지금까지 국제결혼하는 ‘농촌 총각’에게 약 600만원의 지원금을 줬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외국에서 여성을 사오는 행위를 국가가 묵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지원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물로서 여성과 지원금으로서 여성, 우리는 지참금을 주고받고, 염소와 신부를 바꾸던 시절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가.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섹스/젠더 체계는 유동적이고 역사적이라는 점이다. “섹스/젠더 체계는 불변하는 억압적 장치가 아니며, 전통적 기능의 상당 부분을 이미 상실했다. 그럼에도 저항이 없다면 그것은 저절로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루빈의 지적은 “섹스/젠더 체계를 정치적 행동으로 재조직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성 위계화하면 억압적 젠더·섹스 체계 돼 여성을 거래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까. 루빈은 이후 <성을 사유하기>에서 좋은 성과 나쁜 성, 바람직한 섹슈얼리티와 불건전한 섹슈얼리티 등의 구분을 비판하면서 정상성을 중심으로 성을 위계화하는 문제를 비판한다. 성의 위계화는 바람직한 인간이라는 규범을 만들어내고 이는 다시 억압적인 섹스/젠더 체계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빈은 강제적 섹슈얼리티와 성역할 제거를 꿈꾸었다. 20대에 세계를 놀라게 한 논문 ‘여성 거래’를 발표하고 가족과 신앙, 건강한 삶이라는 미국적 가치를 따르지 않았던 그는 이렇게 여성을 교환하는 문제에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답을 제시한다. 허윤 문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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