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천사의 날개는 비에 젖어 푸르네 문제는 통제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스트레스다. 익숙한 방식을 총동원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진다. 스트레스 반응이 길어지면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죽어간다. 면역력과 생식능력이 억제된다. 그 절망 속에서 뇌는 이제까지 써왔던 접속을 해체해나간다.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한다. 새로운 접속을 부르는 파괴다. 재구성하기 위한 해체다. 황무지에서 비틀비틀 어떻게든 다시 길을 내다보면 그전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된다. 그 길을 따라가다 스트레스가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면 불안은 용기로, 무력감은 의지로 변한다. “살다보면 이렇게 언젠가 한 번은 꼭 불현듯 그 자리에 멈춰서게 되는 행운을 경험한다. 그 길이 아무리 성공적인 길이었어도, 아무리 빈번히 이용한 길이었어도 말이다.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체험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금껏 오랫동안 가지 않은 잡풀이 우거져버린 길을 다시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스트레스는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게랄트 휘터)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소설 ‘비 온 뒤’에 등장하는 30대 여자 해리엇은 이탈리아를 홀로 여행 중이다. 원래는 애인과 그리스에 갈 계획이었다. 연애가 깨져버리고 텅 빈 휴가만 남았다. 체사리나는 그가 10살 때 부모님과 함께 왔던 곳이다. 그때 아버지는 목마를 태워줬다. 이후 부모님은 이혼했다. 각자 애인이 있었다. 해리엇이 어린 시절 와봤던 광장을 거닐 때 비가 쏟아진다. 비를 피하러 들어간 교회에서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수태고지를 본다. 교회를 나설 때 비는 그쳤다. 그는 느닷없이 이제까지 자신을 속여왔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려고 연애를 이용해왔다. …그녀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자,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상황을 바꾸려고 더 밝은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의 불변성을 강요하자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물러섰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피해자였다. 해리엇은 이제 그것을 생생할 정도로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전에는 왜 몰랐는지 의문이 생긴다.” 해리엇은 성당에서 본 수태고지가 비 온 뒤 풍경이란 걸 발견했다.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날개는 비에 젖은 푸른빛이다. 다시 이곳을 찾지 않으리란 것도 알게 됐다. 과거의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이제까지 써왔던 방식을 포기해버린 그 순간, 해리엇은 비 온 뒤 말간 풍경 속에 서 있다. “난 망쳐질 수 없는 창조물” 되돌아보면 나는 40년 넘게 전속력으로 불안에서 도망쳤다. 다들 안전을 약속하는 길에 들어서고 싶었다. 많이 속였다. 관계에서 불안이 엄습해오면 가장 눈에 익은 방공호로 숨었다. 자기를 헤치는 방식인 줄 알면서도 잠깐은 숨 돌렸다. 종속변수의 삶은 통제 불가능하게 불안하다. 멈춰서니 보이는 곳마다 폐허 같다. 림 킴은 노래했다. “방향을 전환하고 새롭게 정의해… 난 망쳐질 수 없는 창조물. 날것의 나로 존재하는 게 나의 지혜. 황무지에서 왕국으로.” 황무지에서도 자기 손을 놓지 않을 수는 있다. 휘터는 스트레스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보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로 함께하는 느낌을 꼽았다. 타인이 없다면 적어도 자신과 동맹할 수 있지 않을까. 황무지를 토대 삼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를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존버’는 결국 승리한다고 하지 않나.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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