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느릿한 말투였지만 이런저런 소회를 전해주던 노화백은 거기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눈가를 훔치며 자리로 돌아갔다. 참석자들 역시 저릿한 통증을 느끼며 침묵에 잠겨야 했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박진수를 또래들은 빨갱이 새끼라고 불렀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박 화백에게도 늘 형사들이 따라붙었다. 요시찰 명단에서 빠진 건 198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가던 박 화백은 육십이 되자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그림에 매달려보고 싶었다. 운영하던 주물공장을 접고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 그렇게 해서 몇 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고통받는 존재를 만날 때마다…” 행사 뒤 박 화백의 그림이 담긴 작은 책자를 얻어 볼 수 있었다. 2018년 5월 참여연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할 때 만든 것인 듯했다.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를 표현한 그림에서 강렬한 붓놀림이 느껴졌다. 박 화백은 고통받는 개체나 존재를 만날 때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추모제 행사를 마무리할 때마다 함께 부르던 노랫말이 가슴 깊숙이 꽂혀드는 날이었다.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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