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평화와 만나야 한다제1204호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제정은 4·3 진상규명 운동의 큰 결실이었다. 제주4·3위원회는 허약한 조사 권한에도 2003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간했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 ...
“군사재판 희생자 명예회복 시급”제1204호4·3과 내일 제주4·3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유족의 한은 현재진행형이다. 부모를 잃고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멸시를 견뎌온 세월 앞에서 국가는 오늘도 말이 없다. 유족들이 4·3특별법 개정으로 4·3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요구하는 이유다. 당시 진압작전을 지휘했던 미국에 책임을 묻는 일도 더는 미룰 수 ...
제주와 오사카 사이 역사가 흐른다제1204호 “대판(오사카)이오, 대판!” 제주 민요 <오돌또기> 가락이 흐르는 가운데 푸른 대양을 가르며 배 한 척이 앞으로 나아간다. 까만 굴뚝에서 새까만 연기를 내뿜는 배의 선수에는 ‘君が代丸’(기미가요마루)라는 이름이 새겨 있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동명 소설을 같은 재일...
4·3 희생자를 선별하지 말라제1204호자이니치와 4·3 36년 동안 이어진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극한 혼란 속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에게 일본은 더 나은 삶이 보장된 ‘신천지’였고, 차별은 당할지언정 학살은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였다. 그렇게 일본으로 흘러든 이들이 제주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이른다. 제주...
아스팔트에 묻힌 영혼들제1204호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존함은 이정악. 향년 94. 장례식에 가려고 부산에 갔다. 상조회사에서 내주는 검은 상복을 입었다. 옷은 좀처럼 몸에 맞는 구석이 없었다. 화가 났다. 스타일 때문은 아니다. 외할머니 상가에 몸에 맞는 수트를 가져오지 않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따위 옷을 입고 상을...
4·3의 응어리를 캔버스에 담다제1204호 제주도민에게 제주4·3은 ‘올레걸러’(집집마다) 말 못한 고통의 시간이자 오랫동안 가위눌렸던 한의 실체다. 4·3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제주인들은 가족의 주검을 찾지 못해 헛묘(칠성판에 망자의 옷가지만 넣고 만든 무덤)라도 만들어 영혼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고, 행방불명된 망자를 위해 원혼...
이름 없는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제1204호 금기시됐던 제주4·3을 세상에 처음 알린 건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었다. 그 뒤 회화, 음악, 연극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4·3 예술이 피어났다. 강요배 화백의 4·3 연작화 <동백꽃 지다>는 4·3을 대중적으로 알린 대표적 작품이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분노를 읽다제1204호 두 번째는 더 깊고 아린 체험이었다. 지난 1년 여에 걸친 월례 세미나를 통해, 김석범(1925~ ) 대하소설 <화산도>(火山島) 전 12권을 다시 완독했다. 2015년 10월 <화산도>가 한국어로 완역된 직후 약 석 달에 걸쳐 처음...
“4·3은 내 숙명이었다”제1204호예술로 피어난 4·3 제주4·3이 잊힌 게 아니라면, 광기의 역사를 고발한 문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4·3이 외롭지 않았다면, 야만의 세월을 기록한 예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이삼촌>의 현기영부터 김석범, 강요배가 있어 4·3의 슬픔이 뭍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영화 <지슬&g...
4·3을 관광상품화 말라제1204호 “미안하다고 하지 말걸 그랬다. 죄송하다고 하지 말걸 그랬다. 나는 내가 피스메이커(peacemaker)인 게 싫다.” 얼마 전 일기장에 내가 적은 말들이다. 내 안에서 갑자기 분출된 말들이라 당황스러웠다. 내 안에 ‘나는 내가 이러는 게 싫어’라는 감정이 오랫동안 쌓여 있었던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