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2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맨 오른쪽)가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원희룡 제주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 법안에 피해자와 유족의 권리, 제주도민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조항을 뒀다. 그동안 과거 청산 과정에서 희생자와 유족은 정부 시책 대상으로 위축돼왔다. 그렇기에 작업팀은 4·3뿐 아니라 피해 회복 과정에서도 이들을 권리 주체로 상정했다. 특히 4·3은 제주도민의 항거와 결부된 집단적 사건이기에 제주도민의 자주적 의사를 주목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이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고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제주4·3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특히 추가적인 피해 신고와 진상 조사를 하도록 했다. 보수 정권 아래서 제주4·3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 그래서 개정안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법이나 세월호법을 참조해 애초 4·3특별법에는 없던 조사 권한을 추가했다. 이를 통해 한층 보강된 각론 보고서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셋째, 제주4·3 군사재판을 무효화하는 조처를 규정했다. 제주에서는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법적으로 매우 의문스러운 군사재판이 열렸다. 군사법원은 관련자 2500여 명에게 장·단기 징역형에서 사형까지 중형을 선고했다. 이 재판은 약식 또는 자의적 처형이라 할 정도로 부적절한 군사 조처였다. 더구나 재판서(판결문)도 없이 이 조처를 집행했다. 이런 군사적 처분에 재심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재심 재판을 하려면 판결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없는 판결문을 법원에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결문이 난리 중에 소실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이 이미 증명됐다. 그렇기에 사법적 재심 절차 대신 외국의 유사 법제를 참조해 판결을 입법적으로 무효화하려 했다. 법물신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의 사법 문화를 생각할 때 입법으로 재판을 무효화하는 것은 충격적 해법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제주4·3 군사재판이 그만큼 법 파괴적이고 야만적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넷째, 피해자와 유족의 보상 규정을 도입했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보상받는다’는 것은 과거 청산의 법리상 이제 하나의 상식이 됐다. 그러나 4·3에서는 이런 기본적 정의가 미뤄지거나 배제됐다. 비판가들은 가해자에게 형사처벌이 없는 피해보상을 도덕적으로 힐난하지만, 가해자 처벌은 지금은 돌파하기 어려운 장벽이라 보고, 응보 대신 보상을 추구했다. 이 경우 희생자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좌우를 막론하고 평등하고 실질적인 보상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다섯째,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명문화했다. 어린 시절 비극을 당한 사람들이 친척이나 이웃의 호적부(가족관계등록부)에 입적해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개정안은 가족관계등록부가 사실과 다를 때, 제주4·3위원회에 신청해 먼저 유족으로 인정받은 뒤 법원에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여섯째, 제주4·3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하고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했다. 4·3은 불과 2~3년 사이에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고, 중산간 마을은 무장대 진압을 명분으로 군경이 완전히 파괴했다. 개정안에는 유족들이 심리적 고통과 정신적 질환을 치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트라우마센터 설치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다양한 처방을 시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곱째, 제주평화공원은 지난 몇 년 동안 우익들이 ‘폭도공원’으로 매도했다. 70년 전 군정의 일방적 정책과 유엔헌장에 반하는 분단국가 탄생에 항거한 제주도민을 폭도로 규정한 것은 부당한 2차 가해다. 그래서 4·3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부인, 역사 왜곡 행위에 준해 규제할 수 있게 했다. 4·3의 사회 통합적 극복에 나서야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정리하고 과거의 불법을 사회 통합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70년의 세월을 보낸 지금 우리는 명예로운 휴전을 추구해야 한다. 4·3을 타자의 역사로 더 이상 억압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역사로 수긍해야 한다. 더구나 분단 극복과 평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4·3의 정리 작업은 평화를 형성하는 연습 공간이다. 4·3 70주년은 피해 생존자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마지막 10년이다. 그래서 개정안은 국가에 정의의 책임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피해 생존자의 고통에 대한 인도적 책임까지 더하려는 채찍이고자 한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정책기획위원장·제주4·3희생자유족회 법률지원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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