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못해도 말귀는 다 알아듣는 워리제1286호 우리 집 병원은 안방 아랫목입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몸이 시원찮으면 안방 아랫목에서 몸조리를 하고 살아났습니다. 추운 겨울 얼음물에 빠진 나그네도 아랫목에 묻어 살려 보냈습니다. 겨울 동란에는 지나가는 허약한 피란민도 우리 집 아랫목 병원에서 여럿 몸을 추스르고 갔습니다. 태어난 지 사흘...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외 신간안내제1286호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김태권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5500원 고기를 먹는 건 남의 살을 받는 일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갖춰야 하는 예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그 살을 먹는다는 사실을 먹는 내내 자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육식의 ...
아빠 육아도 질보다 양!제1286호성평등한 세상은 남성에게도 좋을까?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해방을 선사할까? 미국 서부 해안에 사는 아빠 캐머런은 직장을 잃고, 종일 집에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실직에 육아까지 전통적인 ‘남자의 자격'과는 거리가 먼 처지에 놓인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애 덕분에 ...
검찰이 식민지 시기 영광을 되찾은 비결제1286호‘검찰사법’이란 말이 있다. 형사사법 전반에서 검찰이 가진 막강한 권한과 주도적 영향력을 표현한 것이다. 즉, 수사·기소·공판·행형이라는 형사사법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주도적인 검찰권 행사를 의미한다. 여기에 법무행정 전반에 검찰이 행사하는 권한과 영향력까지 생각하면 검찰권력은 무소불위, 막강함 그 자체…
위험한 직선제1286호K는 소도시에 우뚝 솟은 빌딩처럼 이름이 높다. 무명인 시절이 있었지만 갈고닦은 실력을 사람들은 외면하지 않고 알아봐줬다. 국내를 넘어 세계 학자들과도 겨룰 만한 자질을 지녔기에 외피만 그럴듯한 작가는 아니다. 다만 그가 급하게 달려오면서 생략한 것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문학적 능력과 문체다. 즉 희미한 …
수박 먹는 이여, 남의 인생에 씨 뱉지 마라 제1286호그 남자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있었다. 활짝 퍼졌던 햇살이 점점 서늘한 바람을 머금고 서쪽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던 늦은 오후. 나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구르몽의 시를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마침 보기 좋게 가을색이 입혀진 집 근처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그들의 싸움을 상상하는 시간제1286호“수월함 말이야. 우리나, 아이들이나…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옥타비아 버틀러의 <킨> 중에서) 페미니즘 문학이나 문화 관련 특강을 할 때 “늘 추천할 만한 작품은 없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그때마다 추천하는 것이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공상...
메탈 시티, 문래!제1286호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산 지 15년째다. 어릴 적부터 서울 동쪽 지역에서만 살았던 나는 문래동이라는 동네를 잘 몰랐다. 지하철 2호선 노선도에 문래역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았을 뿐이다. 문래동을 제안한 건 아내였다. 2004년 결혼을 앞두고 나의 본가와 아내의 본가(인천) 중간 지점에 신혼집을 얻자고 ...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제1286호수사는 부부싸움과 비슷하다.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와 함께 조사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내가 지금까지 결혼생활에서 파악한 부부싸움의 양상은 이렇다. 보통 배우자의 심기를 건드린 무언가(그게 뭔지는 나도 모른다)가 있고 배우자가 내게서 듣고 싶은 얘기(나의 사과)가 있다. 이런저런 토를 달지 않고 초반에 ...
당신 인생의 결정적 사건을 만드는 법제1286호 ‘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겪고 나서 예전 세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이야기’. 소설이 이런 것이라면 손바닥문학상은 제 인생이란 소설에서 그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밥벌이에 치이면서도 해마다 이맘때면 손바닥문학상 응모 공고를 보며 글쓰기라는 오래되고 낯선 꿈을 기억해냈습니다. 글쓰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