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 깎는 소리와 비슷한 헤비메탈 언젠가부터 이곳은 ‘문래창작촌’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서울문화재단이 2010년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려 문래예술공장을 세우면서라고 한다. 이즈음부터 골목에 벽화가 그려졌고 망치, 톱니바퀴, 용접 마스크 등을 형상화한 조형작품도 세워졌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겉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법이어서 내겐 이전의 철공소 골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철공소에선 여전히 쇠를 깎고 두드리고 용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메탈리카를 떠올렸다. 고등학생 시절 내 마음을 앗아간 메탈리카로 말하자면, 헤비메탈의 지존이라 할 만한 밴드다. 헬로윈, 머틀리 크루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자랑하는 밴드로 헤비메탈에 입문한 나는 얼마 뒤 스래시메탈(헤비메탈의 하위 장르)에 빠져들었다. 메탈리카 때문이었다. 그들은 달랐다. 거칠고 광포한 기타 음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줬고, 낮게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는 묵직한 위엄을 풍겼다. 이것이야말로 ‘무거운 철’의 음악, 헤비메탈의 정수라고 나는 생각했다. 헤비메탈의 시대가 저물고, 내가 나이를 더 먹고, 다양한 음악의 매력에 눈뜨면서 메탈리카는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랬던 메탈리카를 다시 소환한 게 문래동 철공소 골목이었다. 골목을 지날 때면 이어폰으로 메탈리카를 들었다. 어느 밤 철공소들이 문을 닫아 적막한 골목을 지날 때 메탈리카의 <원>을 들으며 헤드뱅잉까지 하는 과감함을 내 안에서 발견하기도 했다(물론 알코올이 부추긴 것이기도 하다). 2017년 메탈리카가 내한공연을 왔을 때다. 그들의 에스엔에스(SNS)에 믿기 힘든 사진이 떴다. 보컬리스트 제임스 헷필드가 쇠파이프로 가득한 ‘벧엘 파이프 상사’ 앞에서 손을 쭉 뻗고 있었다. 1998년 첫 내한공연 때 재래시장에서 돼지머리와 입을 맞추려는 사진을 올렸을 때만큼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내겐 더 큰 사건으로 다가왔다. 배경이 문래동이기 때문이다. 2015년 개봉한 마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문래동 철공소 골목이 나왔을 때도 이만큼 기뻐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는 메탈리카의 동네가 되었다. 헤비메탈 클럽으로 변신한 철공소 거리 지난 10월19~20일 문래예술공장에서 ‘2019 MMC’가 열렸다. MMC는 ‘문래 메탈 시티’의 약자다. 아마 헤비메탈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에서 따왔을 것이다. 요 몇 년 새 하루가 다르게 철공소 골목골목에 생겨나는 술집·밥집·카페 등을 섭렵하며 문래동 전문가를 자처하는 나였건만, 우리 동네에 이런 헤비메탈 페스티벌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알고 보니 2014년부터 매년 한두 차례 꾸준히 열어왔다고 한다. 이번엔 한국 헤비메탈의 큰형님 블랙홀 등 12개 국내외 밴드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왠지 모를 부채의식을 안고 19일 현장을 찾았다. 문래동 주민은 공짜였다.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일당백이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헤드뱅잉 하는 이, 안경 낀 모범생 같은 얼굴로 더 미친 듯이 뛰노는 이,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외국인도 꽤 있었다. 무대 위 로커는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과 어깨동무하고 머리에 물을 뿌렸다. 1980년대 유행한 글램메탈을 추구하는 듯한 밴드 크랙샷이 머틀리 크루의 <걸스, 걸스, 걸스> 같은 익숙한 곡들을 부르는 순간, 80년대 헤비메탈 클럽으로 변신했다. 이들은 막판에 건스앤드로지스의 <웰컴 투 더 정글>과 <파라다이스 시티>로 분위기를 달구며 무대를 마쳤다. 공연장을 나와 철공소 골목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괜히 혼자 중얼거렸다. ‘메탈의 천국 문래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메탈은 아직 죽지 않았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