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영웅본색>에 출연한 장국영. 조이앤시네마 제공
영화의 주인공은 송자호·송자걸 형제다. 범죄조직원과 경찰이라는 정반대 길을 걸으며 갈등을 겪다 결국엔 이를 해소하는 게 영화의 큰 줄기다. 둘 사이에 조력자처럼 등장하는 이가 마크다. 주연보다 조연에 더 가까운 인물로, 출연 분량도 많지 않다. 하지만 주요 액션 장면을 책임지는데다 형제가 화해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며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입에 성냥개비 하나 물고 긴 ‘바바리코트’(트렌치코트가 맞는 표현이지만 당시엔 모두가 이렇게 불렀다) 자락을 휘날리며 총탄을 날리는 장면은 수많은 남자 가슴에 불을 질렀다. 너도나도 바바리코트를 입고 입에 성냥개비를 물었다. 올해 만우절, 극장을 찾았다. 장국영 17주기를 맞아 한 멀티플렉스에서 장국영 기획전을 마련했다. 30여 년 만에 <영웅본색>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때 하지 못했던 걸 이제야 해본다는 심정으로 검은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었다. 요즘 성냥개비는 구하기 힘드니 이쑤시개라도 물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마스크를 써야 해서 관뒀다. 극장에 가보니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관객이 제법 있었다. 트렌치코트 차림의 중년 남자가 많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러고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젊은 여성 관객이 더 많았다. 10대 여학생도 있었다. ‘아, 맞다. 장국영 기획전이지.’ 뒤늦게 떠올렸다. 영화는 뭉클했다. 주윤발은 여전히 멋있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나의 관점이었다. 그땐 주윤발만 보였다. 위조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에 갖다대는 장면, 몸을 날리면서 쌍권총을 100연발쯤 되는 기관총처럼 난사하는 장면, 클라이맥스에서 처절한 최후를 맞는 장면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룡과 장국영이 연기한 형제의 감정선에 더 눈길이 갔다. 특히 앳된 얼굴의 장국영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와 꽂혔다. 형제의 뒷모습을 정지 화면으로 잡으며 영화는 끝났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익숙한 노래가 흘렀다. 장국영이 부른 <당년정>이다. 속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다른 관객도 그랬다. 만우절을 앞둔 일요일 아침, 매주 게스트로 출연하는 한국방송 쿨FM 라디오 <조우종의 FM대행진> 뮤직업로드 꼭지를 장국영 특집으로 꾸몄다. 장국영이 부르거나 출연한 영화에 쓰인 노래 8곡을 골라 틀었다. 첫 곡은 당연히 <당년정>이었다. 다음 곡은 <영웅본색 2> 주제가 <분향미래일자>였다. 이날 선곡한 음악 중 가장 이색적인 곡은 사비에르 쿠가트의 연주곡 <마리아 엘레나>였다.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흰 러닝셔츠와 트렁크팬티 차림으로 맘보춤을 출 때 흐르던 음악이다. 1930년대에 멕시코 작곡가 로렌소 바르셀라타가 당시 멕시코 대통령 부인 마리아 엘레나에게 헌정한 곡이었으나, 이제는 장국영을 상징하는 음악이 됐다. 지금까지도 우리 곁을 날아다닌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탓에 사랑을 믿지 않고 그 어떤 여자에게도 정착하지 못하는 남자로 출연한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이 대사로 그는 ‘발 없는 새’라는 별명을 얻었다. 47년을 쉼 없이 날던 장국영은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마지막 비상을 하고 땅에 내려앉았다. 발 없는 새의 슬픈 울음은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 곁을 날아다닌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