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이제는 죽을 푹 끓여 거르지 않고 주어도 혼자서 잘 먹습니다. 혼자서 먹느라고 반은 엎지르기도 하고 죽그릇에 빠지기도 합니다. 주둥이를 죽그릇에 너무 깊이 넣어 코로 죽이 들어가 캑캑거리고 토하기도 하면서 혼자 열심히 먹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커갑니다. 혼자서 방 안에 있기를 싫어합니다. 문지방을 넘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문지방을 넘으면 마루 끝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뜨락에서 굴러떨어지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천방지축입니다. 병아리를 잡아먹겠다고 병아리 꽁지를 물고 잡아당깁니다. 할머니는 애초에 길을 잘 들여야 한다고 “워리야, 이리 와봐라~” 하며 병아리를 보여주십니다. 철없는 워리가 병아리를 덥석 물려고 할 적에 싸릿가지로 주둥이를 따끔하게 때리며 병아리를 건드리면 혼난다고 몇 번 야단칩니다. 워리는 이제 병아리만 보면 고개를 숙이고 외면하고 다닙니다. 얼마나 철이 없는지 풀밭에 기어가는 뱀을 물어 당기다 물려서 입이 퉁퉁 부어서 밥도 먹을 수 없습니다. 개가 뱀에 물리면 짚 또아리에다 밥을 주면 낫는다고 합니다. 개는 뱀독에 강해서 며칠 고생은 했지만 무사했습니다. 워리 위에 고양이 그 위에 닭 철없던 워리는 이제 우리 집 가족 중에서 제일 바쁩니다. “워리야, 날기(나락) 좀 잘 지켜라. 닭들이 파먹지 못하게 잘 지켜야 해.” 이야기만 하고 가면 근심 안 해도 됩니다. 사람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하루 점두룩(하루 종일) 날기 한 톨도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냅니다. 날기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온 집안의 짐승들도 서로 싸우지 못하고 잡아먹지 못하게 지킵니다. 사람들만 워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얼마나 착한지 고양이와 닭, 오리, 병아리도 잘 데리고 놀아줍니다. 워리가 누워 있으면 고양이가 그 위에 눕고 고양이 위에 닭이 올라앉고, 오리들도 워리 주위를 싸고 눕습니다. 우리 집 짐승들이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어릴 적부터 손끝에서 키우며 사람처럼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칭찬하며 키운 덕분 같습니다. 워리는 말은 못하지만 말귀는 다 알아듣습니다. 오리 새끼는 강에까지 한두 번만 길을 알려주고 데려다주면 따로 먹이 줄 일도 없고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불러오기만 하면 되지만, 오고 가는 동안 까마귀나 매가 채갈 염려가 있어 사람이 일일이 데려다주고 데려왔습니다. 하루는 “워리야 오리 새끼 좀 강까지 바래다주고 저녁때가 되면 데려올래?” 그냥 해본 소리였습니다. 워리는 정말로 오리를 강까지 데려다줍니다. 오리가 다 큰 뒤에도 저녁때가 되면 꼭 시간 맞춰 데려옵니다. 새끼 산토끼를 물어다 준 것도 워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착한 워리에게 고기를 구워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하십니다. 때론 강에서 잡은 뱀장어를 화롯불에 적쇠(석쇠)를 얹어 굽습니다. 워리는 화롯가에 앉아 코를 벌름거리며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맑은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머니를 쳐다봅니다. 어머니가 워리를 바라보는 눈에도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머니는 우리보다 워리를 더 좋아하는가부여” 하니 할머니가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그만큼 대단하단다. 눈도 안 떨어진 걸 데려다 키웠으니” 하십니다. 기름이 지글지글 나오면 밀가루에 굴려 또 구우면 기름이 나옵니다. 여러 번 밀가루에 굴려 구워 큼직한 고기 토막을 만들어 워리에게 상으로 먹일 때도 있습니다. 워리는 데려온 다음해부터 봄가을로 새끼를 낳았습니다. 워리는 새끼를 배서 힘든 몸으로도 집 지키는 일을 게을리하는 법이 없습니다. 체구도 별로 크지 않고 아주 착하게 생겼는데, 집 주위에 낯선 사람이 오면 용납하지 않습니다. 밤나무 밑에 낯선 사람들을 얼씬도 못하게 해 밤도 지킵니다. 밤중에 닭장에 부엉이가 걸린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평소에는 삽짝(사립짝)거리에 집이 있어 거기서 먹고 자고 합니다. 새끼 낳을 때가 되면 부엌 마루 밑으로 들어와 새끼를 낳습니다. 한 번에 여섯 마리, 일곱 마리씩 낳습니다. 새끼 낳을 때면 사골을 고아서 할머니는 워리가 새끼 낳을 때가 되면 어머니한테 꼭 사골을 사오라고 당부 당부하셨습니다. 사람도 먹고 워리도 먹이자고 하십니다. 사골은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뽕나무 장작으로 고아야 국물이 잘 우러납니다. 서너 번쯤 고아 사람이 먹고 다음부터는 쌀뜨물을 받아 붓고 푹 고면 열 번을 고아도 기름이 동동 뜨는 뽀얀 사골 국물이 나옵니다. 거기에 죽을 끓여 먹이면 어미의 젖이 잘 나와 강아지가 아주 복스럽고 기름이 졸졸 흐르게 예쁘게 잘 큽니다. 어머니는 개 판 돈으로 살림을 사면 잘 산다고 해서 강아지를 판 돈으로 꼭 살림을 장만하십니다. 부엌에 걸린 열두 동이들이 가마솥도 봄가을 강아지 판 돈으로 산 것입니다. 밥사발도 사고 대접도 사고 술잔도 샀습니다. 꾀 많은 우리 집 단골 옹기 장사 아저씨는 강아지 팔 때가 되면 용케도 알고 예쁜 항아리를 지고 와 팔고 갔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