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생략하고 싶다면제1189호미야모토 데루가 쓴 <금수>의 첫 문장은 ‘전략’이다. 앞 내용은 대강 생략한다는 말이다.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굳이 과거의 일을 꺼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문일 수도 있겠다. <환상의 빛>으로 유명한 미야모토의 <금수>는 10여 년 전 이혼한 두 사람이 우연...
<두 어른> 외 신간 소개제1188호두 어른 백기완·문정현 지음, 오마이북 펴냄, 1만5천원 ‘일’이 터질 때마다, 이 어른들은 백발을 휘날리며 등장한다. ‘늙지 않는 패기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두 사람이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나눈 대담을 엮어 책으로 ...
꽃보다 장작제1188호북유럽 사람들에게 나무는 특별하다. 그들은 거대한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의 가지가 세상을 감싸고 여기에서 최초의 인간이 생겨났다는 창조 신화를 갖고 있다. 영하 20℃는 예사로운 이들에게 나무는 폭풍 등의 자연재해로 전력 공급이 중단됐을 때 버틸 수 있는 생존의 보루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의 한 시인은 “갓 벤 …
당신의 이름은 세라 페인입니다제1187호얼마 전 마음이 심란해서 내게 시를 가르쳤던 은사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선생님은 반으로 쪼갠 석류가 놓인 접시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석류를 한 알씩 떼어 먹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석류를 손바닥에 털어 한 움큼 삼켰다. 손을 붉게 적시며 한 움큼씩 먹어야 석류 ...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외 신간 안내제1186호모든 삶은, 작고 크다 루시드폴 지음, 예담 펴냄, 2만3700원 그는 농부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나무를 돌보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쓴다. ‘글·노래·나무를 짓는 농부’ 루시드폴이 2년 만에 8집 음반과 함께 에세이집을 펴냈다. 단단하고 따뜻한 목소리와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
육지 동물에게 권한다제1186호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지구 대신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우주를 탐사하는 ‘인듀어런스호’ 승무원들은 바다가 있는 행성을 보자 탄성을 지른다. 물이 있는 곳. 그곳엔 반드시 생명이 있을 터이니.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의 심각성을 고발한 <침묵의 봄>으로 잘 알려진 레이철 카슨...
헌책의 재발견제1186호 자판기에 5천원을 넣는다. 로맨스소설, 추리소설, 여행, 힐링, 아동, 자기계발, 지식교양 등 8가지 장르 중 하나를 고른다. 또르륵, 포장된 책 한 권이 나온다. 경기도 고양의 복합쇼핑몰에 있는 책 자판기 ‘설렘자판기’다. 설렘자판기의 원리는 이렇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정성 들여 ...
생각하는 그 남자를 생각한다제1185호 양천구 목2동 505번지, B02호 반지하에 틀어박혀 오랫동안 생각 중인 남자가 있다. 생각은 오로지 ‘그 일’에 머물러 있다. ‘그 일’이 벌어진 ‘그날’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남자는 단순한 삶을 살고자 결심했다. 가구도 조명도 없앤, 텅 빈 거나 마찬가지인 집에서 생각을 이어가느라 종일 앉아...
곰의 편에 설 때제1184호때는 2040년. 북극의 얼음이 거의 녹아버린 ‘대해빙’을 겪은 뒤, 영국엔 콜레라가 창궐한다. 황폐한 땅에 남은 동물이라곤 다람쥐와 쥐·비둘기뿐이다. 강과 개천은 병균으로 오염됐다. 몸을 씻기는커녕 마실 물조차 없다. 사람들은 오염된 물에 표백제를 섞고 끓여 수증기만 모아 입술을 축인다. 상류...
여행 중 호텔에서 그를 만난다면?제1183호호텔 무료 숙박권을 거절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실제 호텔에서 묵어본 적은 서너 번에 불과하다. 낯선 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조명과 양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의 미소를 떠올리면 괜스레 부담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제공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