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는 마치 가장 중요한 용건을 잊었다가 뒤늦게 떠올린 것처럼 다급하게 묻곤 했다. “아, 맞다! 엄마는 잘 계시지?” 그러고선 안도했다. 다른 친구는 종종 내가 키우는 개의 안부를 물었다. 아는 동생은 뜬금없이 “언니, 애인은 잘 지내지?” 묻고는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럼 됐다” 하고 한결 밝아진 어조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엄마를 본 적도 없는 친구, 내가 키우던 개의 사진을 몇 번 본 적 있는 친구, 내 애인의 이름도 모르는 동생. 그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이유는 나의 행복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들을 떠올리면, 사랑의 속성은 깊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넓어지는 것인 듯하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진짜 근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잃는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의 그날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 그날 퇴근한 두 사람은 함께 버스에 올랐다. 앉을 자리가 없어 버스 손잡이를 잡고 나란히 섰다. 첫 번째 좌석 앞이었다. “집에 호박이 있어.” 여자가 말하던 참에 9인승 승합차가 버스를 들이받았다. 놀란 남자는 자신의 가방을 움켜쥐었고 여자는 창밖으로 튕겨나가 죽었다. 가방 안에 뭐가 들었냐면 충전기, 열쇠, 통장과 도장, 피부염 연고, 껌, 손수건, 영화 티켓, 복권 한 장, 동전, 메모 등등. 말하자면 잡동사니들. 왜 여자가 아니라 가방을 붙잡았는지를 생각하면 답은 하나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다. 속수무책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면? 돌이켜보면 그 여자와 살던 옥탑방의 벽지는 지저분했고, 도금이 벗겨진 손잡이 때문에 툭하면 손을 베였다. 욕실 천장에선 흙탕물이 흘러내렸고, 보일러를 켜지 않으면 금세 이불이 눅눅해졌다. 살기 편해서 행복했던 게 아니라 불편한 여건에 잘 적응해서 행복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남자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생각이란 게 없어서였다고. 근 70년째 휴전 중인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한 이유 중 하나는 전쟁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고, 생각하지 않으니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고, 상상하지 않으니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궁금하질 않다. 행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만약 그러다 불시에, 조짐도 예고도, 징조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기 시작할까? 도도라 부르기도 하고 그저 d라고 부르기도 했던 그 남자를 떠올릴까.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그 남자는 최근 취직을 했다. 친구의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친구의 애인이 안녕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요즘 나는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고 상상조차 하지 않던 것을 더 이상 우습게 여기지 않으려고. 좀더 넓어지려고. 당신의 안부도 걱정하면서 살아보려고, ‘웃는 남자’를 생각 중이다.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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