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는 거대 미역이 휘날리고제1376호 감자를 키우려면 멀칭은 필수다. 여기서 멀칭이란 풀이 자라지 못하게 두둑 위에 검정 비닐을 씌우는 것을 말한다. 전종휘 농사꾼님은 비닐을 혐오한다 했지만, 비닐 멀칭의 이점은 또 있다. 수분이 마르지 않아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감자가 땅속에서 알아서 자란다. 주말 농부에게는 노 비닐, 노 농사. 비닐 없이...
웃기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제1376호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만담가인 기타노 다케시는 코미디언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긴장과 해방의 고삐를 쥐고 웃음이라는 자연현상을 인공적으로 일으키는 사람.’ 멍청한 표정을 짓지만 모두가 폭소하는 순간에 혼자 얼음처럼 깨어 있는 코미디언은 이중인격자가 되기 딱 좋은 직업이다. <문학의 밤>...
남녀, 투자와 선택의 균형제1376호 여름날의 산책은 소리가 함께합니다. 선선한 공기가 아직은 기분 좋은 아침, 맴맴 우는 매미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울립니다. 한낮의 열기가 남은 여름밤에는 개구리들의 합창이 귓전에 맴돕니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울어대니 도무지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자원을 투자한 쪽이 번식에서 선택 우선권…
N개의 올림픽제1376호 8월8일 도쿄올림픽 폐막식의 끝자락, “32회 도쿄 비장애인 올림픽, 한국방송 KBS의 모든 중계방송을 여기서 마칩니다”라며 중계를 끝낸 이재후 아나운서의 마무리 멘트는 ‘장애인 올림픽’을 자연스레 상기시켰다. ‘장애인 올림픽’이라 불리는 8월24일부터 9월5일까지 열릴 도쿄 패럴림픽에 대한 예고장인 셈이다....
당신의 목숨값은제1376호 2021년 봄, 한국에서 꽃다운 나이의 두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한 명은 서울 한강공원에서 친구와 놀다가 실종된 뒤 주검으로 발견된 의대생, 다른 한 명은 경기도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바닥 청소 작업을 하다가 육중한 철판에 깔려 숨진 ‘알바 노동’ 대학생이었다. 두 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관심, 대중의 반응...
“괜히 산다고 하다가 못 사면 창피하다”제1373호 살림을 시작하고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항상 넉넉지 못한 살림에 땅을 사고 집을 사느라 짜고 짜고 살았습니다. 땅 사고 집 살 때 돈이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값의 3분의 1만 있으면 빚내서 샀습니다. 이자 갚고 원금을 갚기까지 아이들 간식은커녕 우윳값까지 아껴야 했습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풀 뽑다 ‘열사’ 되는 건가제1373호 얼치기 초보 농군에 불과한 내가 처음 밭을 일굴 때 나름의 농사철학 비슷하게 다짐한 게 하나 있다. 소출이 좋은 농부는 못 될지언정 땅심을 죽이는 농부는 되지 말자. 전북 부안 변산에서 농사짓고 사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책을 몇 권 읽고 생긴 생각인데, ‘아는 것을 행하라’는 게 옛사람들의 가르침 아니던가...
사회적 고립이 질병을 악화시킨다제1373호 코로나19 시국은 ‘단절’을 미덕으로 만들었다. 연결과 접촉이 저어되는 시대, 아픈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립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뇨를 앓는 홀몸노인을 생각해보자. 식단 개선과 투약으로 합병증은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외로움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갈수록 심화하는 사회적 고립이 중증질병...
돈을 좇는데 좋아하는 일도 한다고?제1373호 한길만 파기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 그래서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능인’. 에밀리 와프닉의 책 <모든 것이 되는 법>에 나온 개념이다. 정혜윤님은 2021년 초에 이 책을 읽자마자 다능인을 자신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단박에 끌어왔다. SNS에 알리고,...
정의의 군대가 북을 쳐도 일어나지 않으니제1373호 김창숙이 국경을 넘은 때는 1925년 8월23일께였다. 그의 나이 47살이었다. 1919년 4월 망명길에 오른 지 6년4개월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으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합법적인 귀국길이 아니었다. 행여 남의 눈에 뜨일세라 몰래 잠입하는 길이었다. 조선으로 밀입국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