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에 있든 길을 잃는 이유제1373호 어릴 때부터 ‘소나무처럼’ 고스란히 키워온 습관이 있다. 습관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습관은 어떤 행동을 계속하다가 길들어버리는 것이라면, 이 경우는 불가항력이고 늘 새로우니까. 나는 심한 길치다. 지도를 잘 볼 줄 모르거니와 잘 보려 하지도 않는다. 태어나서부터 죽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우리 ...
공연 중간 ‘소리 없는 아우성’… 한 골 먹었구나제1373호 공연 하루 전날 총리허설을 위해 무대 위에 섰다. ‘우리 정말 마스크 벗어도 되는 거야’ 하며 설레어하는 눈동자 중 몇몇은 이미 눈물이 차올랐다. 마침내 마스크를 벗고 노래를 시작했다. 더욱 정확히 들리는 발음과 강약 조절부터 극장 구석까지 닿는 소리의 울림까지…. 이전엔 껍질도 안 벗긴 하드를 빨아먹다가 ...
남편이 바람 피우는데 악역은 부인인 설제1372호 한국 드라마 속 ‘딩크족(의도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 세계관’은 대개 두 갈래로 나뉜다. 결혼 전 아이 없이 살기로 약속한 부부, 그러나 도대체 피임을 어떻게 하는지 왜 아무도 정관수술을 하지 않는지 궁금할 만큼 이들에겐 백이면 백,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긴다. 아무래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딩…
세월을 지혜로 바꾼 두더지쥐제1372호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흔한 밈 가운데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면 생기는 일.JPG’ 유의 것이 있습니다. 턱선이 날렵했던 아이가 할머니 집에서 몇 달을 지낸 뒤 볼살이 터질 만큼 통통해져 돌아왔다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 아래 댓글로 저마다 다양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댓글은 많지만 결은 비슷합니...
가내수공업하는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제1372호 웹툰 단행본은 편집자 한 명이 최소 두 달에 한 권을 내는 숨 가쁜 사이클로 돌아간다. 덕분에 웹툰 편집자로 지낸 5년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판권지에 내 이름이 달린 단행본은 15종 50권이다(세상에… 나 정말 소처럼 일했구나). 그간 출간한 책들을 떠올릴 때면 편집 과정의 괴로움과...
나는 자본 없는 자본주의 인간일까제1372호 “치킨 시킬까?”‘답정너’처럼 식구에게 물었다. 셰어하우스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는데, 서로 식사 당번을 돌아가며 일주일에 한두 번 맡고 있다. 그런데 그날은 요리하기가 너무 귀찮았다. 식구와 공장식 축산과 육류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지만, 그때는 그런 ‘의식’을 붙잡을 여력이 없었다. 어쨌든 돈을 버니까 돈…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제1372호 깨가 털어진 밭은 고왔다. 우유 빛깔이었다. 가을 햇살을 머금으면 반짝반짝한 게 언뜻 밭이 아니라 모래사장 같았다. 4대강 공사를 하기 전 내성천 모래톱이 저런 빛깔이었던가. 그때는 몰랐다. 왜 그런 맑은 빛깔이 났는지. 동네 다른 밭은 안 그랬다. 죄 거무튀튀했다. 멋도 모르고 외쳤다. “새 땅이...
[역사 속 공간] 연암 박지원과 친구들, 청계천에서 놀다제1372호 “술을 더 마시고 크게 취하여 운종교(광통교)를 거닐고 난간에 기대어 옛일을 이야기했다. 당시 정월 보름날 밤에 유연이 이 다리 위에서 춤추고 나서 이홍유의 집에서 차를 마셨다. 혜풍 유득공이 장난삼아 거위를 끌고 와 여러 번 돌리면서 종에게 분부하는 듯한 시늉을 하여 웃고 즐겼다.”(박지원, ‘취해 운종교를 걷다...
여자들이 축구에 미쳤다제1372호 “재밌는 정도가 아니야 지금. 나 진짜 진지하게, 주변에 축구선수 될 거라고 말하고 다니고 있어.”(금혜지, 29살, 교사)골 때리는 스포츠 예능 하나가 시청자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여성들로만 이뤄진 6개 축구팀 리그전에 대한 이야기 <골 때리는 그녀들>(SBS)이다. “축구라...
“모더니즘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제1372호 한국 현대사에서 1930년대 말~1940년대 초는 ‘암흑기’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노골적인 황민화와 폭압통치로 치달았다.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식 이름을 쓰도록 강요하면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뿌리 뽑으려 했다. 조선의 지식인과 대다수 민중은 전쟁과 파시즘의 광풍 속에 민족의 미래를 더는 상상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