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죄책감으로 ‘쌩자연분만’ 제1081호 출산의 고통은 대체 얼마나 심할 것인가. 그 고통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가늠해 보기 위해 출산 후기들을 폭풍 검색했지만 그럴수록 두려움은 배가 됐다. “진통이 너무 심해서 잠시 기절했어요. 아기가 무사해서 다행이지 정말 나쁜 엄마가 될 뻔했네요.” 얼마나 아프면 기절을 다했을까. 출산의 고통이 몸을 뼈째 잘라...
<청춘일기> 외 신간 안내제1081호 청춘일기 조성주 지음, 꽃핀자리 펴냄, 1만3천원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인 저자가 만난 청춘들의 고민을 일기 형식으로 전한다. 각 장 도입부에는 전태일의 일기를 실었다. 전태일이 ‘노동법’을 아는 대학생 친구를 그리워했듯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외딴 방에 갇혀 동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주말이...
A급 전범·자민당 그리고 김종필제1081호어느 봄날 소년은 아버지, 동생과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넌다. ‘만세후’(萬歲後·1919년)였던 탓에 조선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소년의 조선행은 시집간 누나(남편은 용산역 역장이었다)에게 얹혀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누나에게도 자식이 많았기에 결국 각기 다른 가정의 양자로 보내졌고, 향수병을 ...
박설규氏의 가을제1081호박설규氏. 그 동네 최고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시멘트 회사에 입사해 오래 근무했다. 잘생긴 남자였고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알뜰하고 착한 아내와 탈 없이 크는 세 자녀가 자랑이었다. 퇴근길 손에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담긴 누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득달같이 달려와 손아귀 ...
어떤 출판사를 살렸던 산문들제1081호 지금은 사라진 어느 출판사에 1년간 있었다. 부도는 2011년이었지만 편집자로 근무했던 무렵에도 사장은 “위기”라며 마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여러 번 쓸었다. 침울한 점심 자리에서 팀장은 “월급은 나오잖나. 자금 회전이 안 돼도 제일 먼저 월급을 챙겼다”고 말했다. 회사는 월말이면 밀어넣기를 했다. 어음...
불효자의 아버지는 웁니다제1081호결혼하기 전 이야기다. 몇 년 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석이었는지 설이었는지 모르겠다. 또렷이 기억하는 건 큰아버지가 내게 던진 질문과 이어진 대화다. 질문은 뻔하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하려고?” 큰아버지가 1년에 두 번 만나는 조카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결혼이고 뭐고 아무 생각...
고추장에 밥 비벼 양푼째 올린 제사상제1081호구라우에서 시집온 새댁은 제삿날 시어머니 몰래 이밥을 한 주걱 훔쳐 찬장 밑에 감춰두었습니다. 다들 잠든 틈을 타 몰래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비벼먹을 생각입니다. 새댁네는 논농사를 안 해 제삿날에만 이밥을 먹어볼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야속스럽게도 뭐든 아낍니다. 고추장도 조그만 오갈단지에 하나 해놓고 ...
우측통행을 하면 알파파가 나온다?제1081호5년 전 갑자기 우측보행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오른쪽으로 걸으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었다. 내가 사는 거문도의 등대 가는 길에도 그게 붙었다(지금도 붙어 있다). 그때까지 왼쪽으로 걷던 사람들은 부랴부랴 반대쪽으로 걸어야 했다. 국토해양부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가 근거였다. 그러나 ...
바다의 비위를 맞추는 낙천주의자제1081호 날이 어둑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변했다. 몇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자 곧 방향감각을 잃었다. 리어카만 한 배에 침대 시트만 한 돛이 달린 작은 배를 탄 꼬마들에게는 쉽지 않은 순간, 모두 홀로 각자의 배를 몰며 배 길이의 반만 한 너울을 넘으며 제자리를 맴돌았지...
‘소포모어 징크스’의 징크스제1081호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에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대망의 새 앨범 <카라칼>(Caracal)이 발표되었다. 이것 전에 나온 데뷔 앨범 <세틀>(Settle)이 워낙 호평을 받았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 2집 앨범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