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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측통행을 하면 알파파가 나온다?

5년 전 갑자기 내려진 정부의 우측통행 지시 뒤, 선진국 된다더니 바보만 창궐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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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7 21:20 수정 : 2015-10-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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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갑자기 우측보행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오른쪽으로 걸으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었다. 내가 사는 거문도의 등대 가는 길에도 그게 붙었다(지금도 붙어 있다). 그때까지 왼쪽으로 걷던 사람들은 부랴부랴 반대쪽으로 걸어야 했다. 국토해양부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가 근거였다. 그러나 거기에 등장한 실험대상자 수와 심박수 데이터 수치가 원본과 달랐다는 게 이번에 밝혀졌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콩나물도 함부로 못 다듬겠네

상당히 웃기게도, 당시 홍보 영상에는 우측보행을 할 때 알파파(α-wave)가 많이 발생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것도 조작이라고 들통났다. 그럴 것이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멍청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봐도 그렇게 한다고 알파파가 나온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우측통행이란 단지 오른쪽에 벽을 두고 걷거나 왼편으로 마주 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걷는 것 아닌가.

알파파는 우리의 의식이 심내부으로 들어가는 중간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호흡이나 명상으로 인해 심신이 느긋하고 평안한 상태 때 나오는 뇌파의 한 형태이다. 정신 수련을 해야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난 오래전 이런 것과 관련된 수련 비슷한 것을 받은 적이 있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때 배운 게 정신력으로 병을 치료하는 요법이나 벽 속으로 들어가는 법, 심지어 사람 많은 시내버스에서 곧 빌 자리를 찾아내는 방법 같은 것이다. 물론 요즘 나는 정신은 말짱하지만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고 있고 벽 속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해하실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학교에서 영어를 10년 넘게 배웠으나 외국인 앞에서 한마디 하는 것도 버거워하니까.

단 이건 궁금하실 것이다. 시내버스에서 곧 내릴 사람을 찾아내는 방법 말이다. 좀 야바위 냄새가 풍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면 조금 기다려보시라. 이따가 원고 말미에 여유가 있으면 가르쳐드리겠다.

그 프로그램에는 그것 외에 인상적인 게 여럿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식물에게도 뇌파가 나온다는 거였다. 뇌파측정기를 붙이니 실제 파동이 흘러나왔으니까. 그것까지는 내가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강사의 말에 의하면 측정기를 붙이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 파동의 규칙이 매우 급해지는데, 아프거나 위기를 느끼고 흥분을 한단 소리란다. 더 재미있는 건 사흘 뒤 가지를 부러뜨린 사람이 다가가면 나무가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 알아본다는 소리. 이제 콩나물도 함부로 못 다듬겠네, 나는 생각했다. 하나 아쉬운 것은 마지막 날 초대 손님으로 당시 유명했던 청산거사가 오기로 했는데 낮술 마시자는 친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땡땡이를 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못 만나봤다.


말이 옆으로 샜지만 그때 배운 게 알파파이다. 그 홍보 영상이 맞다면 지난 5년간 우측통행을 한 우리들은 도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차분하고 진중한 인간들로 바뀌어 있어야 한다(그렇다면 운동장 달리기도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니미럴, 주변을 둘러보자, 그런 사람 한 명이라도 새로 생겼는지.

알파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귀찮고 까다로운 수련 말고도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해안 백사장 같은 곳의 부드러운 파도 소리를 들을 때 생긴다.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알파파가 나오는 내부 의식으로 파도 소리가 우리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해하거나 어려운 부탁을 할 때 바닷가를 걸으면 효과가 좋다. 그런데 파도 소리와 우측보행.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보아도 그 둘의 공통점이 글자 수가 4개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다.

화해하거나 어려운 부탁을 할 때

우측통행이 좌측보다 소통이 더 원활했다는 실험 결과도 잘못이었다. 정부가 좌측통행이 일제의 잔재라고 적극 홍보한 것도 근거를 찾을 수 없고, 우측이나 좌측 등 한쪽으로만 통행을 규제할 때 길이 더 막힌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이 대목에서 유행하는 말 한마디. ‘헐.’

내 이럴 줄 알았다. 국가가 나서 국민들 걸음 방향까지 정해주는 것부터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짓이니까. 뭔가 수준 있는 연구 결과라고 믿고 느닷없이 오른쪽으로 걸어다닌 사람들, 바보 됐다. 선진국 됐다더니 이런 식으로 바보들만 창궐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공중도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잘 지키는 편이다. 줄 잘 서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금연 구역도 잘 지킨다. 침은 간혹 뱉지만 사람 없는 곳에서만 그렇다.

무엇보다 기차나 버스, 여객선을 타면 휴대전화를 무조건 진동으로 바꾸어놓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면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잘 지키지 않을 때는 신경질이 난다. 가장 흔한 게 대중교통 안에서의 행태들이다. 끊임없이 울리는 벨 소리와 큰 목소리로 하는 통화, 휴대폰으로 티비를 보거나 음악을 틀어놓는 짓, 신발을 벗는 행위 따위 말이다. 웬만하면 참지만 심하다 싶으면 말을 하게 된다.

단 하나, 길 걷는 방향만큼은 개기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쪽으로 줄 서서 걸어다니는 모습, 이거 영화에서나 보는, 전제(專制)국가의 상징적인 장면 아닌가. 더 나아가 우측통행 강요가 마치 우익이 되라는 뉘앙스로도 들려 국토해양부 담당 공무원들이 ‘오바질’을 했다고 짐작된다.

당시 포클레인을 신처럼 모시고 있던 삽질 정권 때였으니 우리도 이런 연구 할 수 있다고 뻐기고 싶었을 것이다. 토건(土建)세력에 밀린 책상물림들이 어떻게든 칭찬받을 만한 성과물을 내고 싶었을 것인데 반은 성공한 셈이다. 말 그대로 허공에 삽질했으니까.

오해할까봐 밝히는데 난 스스로 좌파라고는 생각 않는다. 단지 양심과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좌파라고 붉은 물감 뒤집어씌우는 나라에서 세금 내고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좌파를 양산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이들은 이렇게 따로 있다. 그나마 그들이 공부를 안 해서 건강 보존하고 있지 혹시나 서구 복지국가의 좌파 이론을 본다면(확률은 극히 낮지만 실수로라도 내용을 이해한다면) 악마의 종자들이 살고 있다고 거품 물고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어쨌든.

우리 동네에 나랑 자주 어울리는 선배가 있다.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슈퍼 한다. 가업(家業)인 가게를 물려받아 오랫동안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섬에서는 놀거리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 둘은 종종 당구를 치러 간다.

개헌하면 ‘보행 방향 설정 자유’도 넣기를

언젠가 그가 당구 치는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경만 하면 그러려니 했는데 이 양반이 하도 오랜만에 치는 당구라 조금 서툴러 보였던 모양인지 ‘이쪽으로 돌려’ ‘그건 쫑 나게 돼 있어. 오시(밀어치기)를 쳐’ 조언이 과했다. 조언이 과하면 잔소리다. 듣다 못한 그가 이렇게 소리쳤다.

“아, 그냥 냅둬. 당구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치게.”

이 모습 확대하면 지금 대한민국이다. ‘왼쪽으로 걸어라, 아니다, 오른쪽으로 걸어라.’ 그때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했다. ‘냅둬, 걸음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걷게.’ 사람은 걸으면서 다른 사람과 스치는 게 정상이다. 서로 같은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어색한 순간이 생겨 웃기도 하고, 이 남자는 배가 너무 나왔군, 이 여자는 푸른색 옷을 좋아하는군, 뭐 이러고 좀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짧은 순간만이라도 사람이 사람의 냄새를 맡고 눈동자를 바라보고 어떤 느낌을 받는 것, 이거 중요하다. 타인에 대한 감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혹시 개헌하게 되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고’ 뒤에 ‘보행 방향 설정 자유도 있고’ 넣기를 청원하는 바이다.

내가 여수로 전학한 게 10살 때이다. 커다란 도시의 큰 학교로 가니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 많았다. 먼저 선도부라는 게 있었다. 그들은 교사와 함께 교문을 지키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적했다. 그때마다 금지, 엄금, 엄격 따위의 단어가 자꾸 따라붙었다.

초등학교 때는 도시락에 쌀밥 금지가 있었고 (혼분식 장려였는데 당시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도 보리밥과 빵을 먹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뉴스 화면 찍을 때 딱 한 번 먹었을 것이다. 직책이 높은 이들의 입은 더욱 간사하기 때문에) 중학교 때에는 복장 관련 규정이 너무 과해 양말도 무조건 흰 것을 신어야 했다. 운동화는 검정색. ‘난닝구’도 색깔 있는 거 입으면 얻어맞았다. 이렇게 일본 군인들처럼 만들어놔야 직성이 풀렸다. 아, 쪽팔리다. 이게 일제 잔재지 뭔가. 일재 잔재 중 살아 있는 가장 큰 덩어리는 친일파 후손이다. 그들의 재력과 영향력이다. 씨팔, 이건 따로 말하지 않겠다.

금기와 의무가 많을수록 살기 힘든 곳이다. ‘오른쪽으로 걸어라’ 지시를 우리가 들어야 한다면 지시하는 사람들도 우리의 요구, 즉 뒷구멍으로 돈 빼돌리지 마라, 남의 집 딸내미 몸을 만지지 마라, 책상에 멍하게 앉아서 네가 할 일을 다른 부서로 떠넘기지 마라, 그렇다고 턱도 없는 짓도 벌이지 마라, 재벌들 뒤는 그만 봐주고 가난한 자들 삶을 생각하라, 책임질 일은 제발 책임을 꼭 져라, 도 따라주어야 한다. 그런데 안 한다. 제기랄, 그러면서 우리들에게는 오른쪽으로 걸으라고 시켜? 나도 못하겠다.

만약 내려야 할 사람이 내리지 않는다면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아, 그리고 빈 좌석 앉는 법. 먼저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릴 때 눈을 감고 호흡을 깊게 한다. 상상으로 5층에서 승강기를 탄다. 4층, 3층, 차례대로 내려간다. 1층에서 내린다. 그리고 버스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다음 눈을 뜬다. 그때부터 아무 생각 안 한다. 버스가 도착하면 올라가서 자연스럽게 걸음이 멈춰지는 사람 옆에 선다. 그 사람은 곧 내린다. 그 사람의 생각을 내 무의식이 읽어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다음 중 하나다. 당신의 의식이 내부 의식으로 내려가지 않았거나 눈치를 챈 그 사람이 골탕 먹이려고 나는 이번에 내린다, 이런 뇌파를 쐈거나 아니면 잊고 있던 약속이 떠올라 더 가기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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