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모어 징크스’의 징크스
‘명작’이라는 게 사실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가, 디스클로저의 두 번째 앨범 <카라칼>
등록 : 2015-10-07 21:07 수정 : 2015-10-10 13:35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에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대망의 새 앨범 <카라칼>(Caracal)이 발표되었다. 이것 전에 나온 데뷔 앨범 <세틀>(Settle)이 워낙 호평을 받았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 2집 앨범이었고, 설상가상(이라는 말은 엄밀히 적당치 않지만 반어적 강조법이라 봐주길) 앨범 전에 선행 싱글로 나온 곡들까지 하나하나 워낙 잘 다듬어져 있어, 소속 음반사가 바랄 법한 우호적 분위기는 이미 넘치게 깔려 있던 터였다. 이 멋진 멍석에 이제 명작이 턱, 놓이기만 하면 되는 상황.
한데, 아으 다롱디리. 이 ‘명작’이라는 게 사실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지. 음반 기준으로 각자의 경력이 기록되는 음악판에서 일찍이 행운의 편지처럼 불길한 어감으로 회자되는 말 중에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다. 두 번째 결과물이 첫 번째보다 못하다는 것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첫 번째 결과물이 이미 성공작이었음을 전제한다.
디스클로저의 경우 첫 번째 결과물인 <세틀>이 자국인 영국 내에서 2013년 베스트 리스트 상위권에 꼭꼭 랭크될 정도로 성공작이었다. 상업적 성공이 아닌 곳에서도 비평적 승리는 확실히 거둬, 여러 지면과 매체에서 상찬의 대상이 되었다. 첫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네 개나 가져간 가수 샘 스미스(Sam Smith)의 성공도 따지고 보면 디스클로저의 이 앨범 수록곡 <래치>(Latch) 피처링에서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 뒤를 이은 <카라칼>에 대한 반응은 현재 두 가지로 갈리는 모양새다. 멋진 앨범이라는 쪽과 실망스럽다는 쪽.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양쪽 말이 결국 같은 뜻이란 사실이다. 실망스럽다는 후자 쪽은 <세틀>이 보여줬던 어떤 유의미성(음악적인 것이든 시대적인 것이든)이 이번에 보이지 않는 대신 팝적인, 아니 말 그대로 ‘팝송’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음을 근거로 든다. 이전까지 디스클로저의 유의미성에 일조했던 (댄스 뮤직의 하위 장르) 하우스 비트와 투 스텝 거라지의 절묘한 궁합도 이번 앨범에서는 희미해지고 대신 일반 하우스 리듬 위주의, 수많은 유명 뮤지션들을 피처링 보컬 군단으로 활용한, 스타디움 공연장급의 성공을 노린 곡들로 채워 번쩍거리기만 하지 생동감이 없다는 것.
그런데 사실 디스클로저에게 팝송은 결코 경멸의 대상이 아니다. <세틀>의 성공에는 그들의 팝적인 감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번 <카라칼>에서는 처음부터 하우스가 아니라 좀더 느린 리듬앤드블루스(R&B) 쪽으로, 클럽보다는 (팝)송라이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던 이들이다. 디스클로저 멤버들(가이 로런스와 하워드 로런스 형제)은 힙합과 솔, 록 등을 고루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정작 댄스 계열은 나중에 덥스텝에서부터 디스코를 향해 역사를 거꾸로 훑어 들어간, 댄스 액트치고는 다분히 이례적이고 복잡한 성격이다. 말하자면, 댄스 레코드가 아니라 팝 레코드라서 <카라칼>을 욕하겠다면, 이것이 디스클로저에게 정녕 욕으로 먹힐지는 의문이라는 뜻이다.
디스클로저는 밸런스를 맞추는 무게 추가 댄스 장르 바깥 저 멀리까지 걸쳐 있는 팀이고, 이번 <카라칼>은 그 강점을 최대한 살린 작품집이다. 샘 스미스 피처링의 <오멘>(Omen)과 크웝스(Kwabs) 피처링의 <윌링 앤드 에이블>(Willing And Able)(이 두 곡을 앨범의 백미로 추천한다), 그리고 로드(Lorde) 피처링의 <마그네츠>(Magnets), 위켄드(The Weeknd) 피처링의 <녹터널>(Nocturnal) 같은 트랙들은 아무리 봐도 ‘너무 가볍고 너무 번쩍이고 너무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팝송들이다. 앨범으로서의 맥락은 옅을지 몰라도 싱글 제조 능력은 이번에 확실히 만개한바, 내가 만약 문외한인 친구에게 이들을 소개한다면 <세틀>의 위대함을 입 아프게 설명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카라칼>에서 몇 곡 뽑아 들려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성문영 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