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아이'와 대면할 시간제1186호 내가 가장 잘하는 건 ‘상처로부터의 줄행랑’이었다. 서른 넘어서도 내 상처와 대면하는 법을 몰랐다. 아픔에서 무조건 도망치면 아픔이 마치 오래전 책갈피에 끼워두고 영영 펼쳐보지 않은 단풍잎처럼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상처는 밀림 속 복병이었다. 이 앞에 무엇이 펼쳐 있을지 알 수 없는 빽…
박정희교 신자인가 상처받은 이웃인가제1186호 #대화 “영화는 박정희와 박근혜 지지자들을 조롱하거나 풍자하지 않는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그것이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사이에 놓인 장벽을 넘어, 대화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정기동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두 글자로 정리했다. 대화! “나와 비슷한 ...
핵폭탄급 주적과 뚜껑 열린 상또라이제1182호 “애 데리고 남편 시댁 가서 소팔이 혼자 놀러 온대~. 노량진에 아는 감자탕집 있다는데 거기서 보재.” 누가 보자고 했니? 너 혼자 보면 안 되니? 연휴의 시작, 느닷없이 ‘진돗개 2호’가 발령됐다. 적의 국지적 도발이 예상된다. 와잎의 친구 소팔(별명·제855호 ‘머리끄덩이와 엘레강스...
복수는 우리의 것제1185호 <부암동 복수자들>은 웹툰을 원작으로, 세 여성이 의기투합하여 나쁜 인간들에게 복수한다는 서사를 지닌다. 학교폭력·가정폭력·성추행 등 드라마가 다루는 갈등이 사소하지 않지만, 극의 분위기는 코믹하다. 이들의 복수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망신의 효과는 크다. 인물의 묘사도 다소 캐리커처화되어 있다. ...
벌들의 밥, ‘비밀’제1185호 “이게 뭐예요?” “남산에서 만든 꿀이에요.” 10월21일 낮, 맑고 밝은 가을 하늘 아래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자치회관 앞 해방촌오거리에는 꿀 향이 은근하게 퍼졌다. 해방촌에서 도시양봉을 하는 비밀(Bee Meal)이 2014년부터 네 번째로 동네잔치를 여는 날이다. 비밀은 ...
좋은 엄마, 이제 그만 할래제1185호 부당한 일과 처우에 저항하라. 아이를 키우면서 내내 했던 말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각각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 나는 이들의 삶에서 가장 자주 맞서 싸우는 부당함의 상징이 되었음을 실감 중이다. 물론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누구라도 너희들을 부당하게 ...
우리 집은 '노아의 방주'제1185호 “작가님은 지금 키우는 반려동물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몇 마리쯤….” 어두운 얼굴로 소주잔을 들이켜던 작가가 손가락 두 개를 슬며시 펴 보였다. “아, 두 마리. 어떤 걸 키우….” 작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 스무 마리…? 제법 많이 키우시네.” 다시 또 고개를 절레절레. “그, 그렇다면...
귀로 옮겨온 구글번역제1185호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거머리만 한 물고기가 나온다. ‘바벨피시’란 이름의 이 물고기는 동물에게서 나오는 뇌파를 먹고 산다. 인간 귓속에 들어온 바벨피시는 뇌파를 먹고 대신 “두뇌의 언어 영역에서 포착한 의식적 사고 주파수와 신경계 신호...
시민 넘어 지민(知民)으로제1185호문(文)은 본디 문(紋·무늬)이다.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모국어는 정신의 지문’이라 한 말이 이를 잘 드러낸다. 글은 무늬이므로, 기억이고 기록이며 시간이다. 시간의 축적이 글을 빚고 대하를 이뤄 역사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글은 곧 형성이다. 인간의 형성 의지가 글을 ...
런던 가기 전에 만나 다행이야!제1185호2012년 영국 런던 도서전에 출장을 갔다. 도서전 업무 외에 틈틈이 런던 곳곳을 돌아봤다. 마침 올림픽을 앞둬서인지 더 깔끔하고 친절한 듯해 마음에 들었다. 브리티시뮤지엄이나 내셔널갤러리 같은 곳의 관람료가 공짜라는 사실도 큰 매력이었는데, 특히 내셔널갤러리에 얼마나 마음을 빼앗겼는지, 그 짧은 일정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