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부모는 짜장으로 기억된다 제1236호해가 바뀌면서 팔순인 어머니와 이미 80대 중반인 아버지가 내 집 근처로 이사 왔다. 두 분이 함께 사는 마지막 집일 듯해 내내 마음이 쓰였다. 전에는 부모님 집이 차로 한 시간 거리였지만 이제는 걸어서 10분도 안 걸린다. 이 소식을 들은 지인들, 심지어 내 오빠와 언니들조차 “괜찮겠냐” 염려부터 했다....
도담이 팬이 생겼어요제1236호 “도담이 팬이에요. 너무 귀여워요.” 얼마 전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 때 데일리(소식지)를 함께 만든 후배 객원기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고백했다. 그는 내 인스타그램에 올린 도담이 사진을 챙겨보고, 마을에서 산책하는 도담이를 만난 적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도 같은 마을 주민이다. 평소 ...
한니발의 코끼리 콜로세움에서 멸종하다 제1236호 “로마의 아이들에게는 거의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흡수한 것 같은 특별한 악들이 있는데, 그것은 극장에서의 편파성, 전차 경주와 검투사 경기에 대한 열정이다.”(배은숙 지음, <로마 검투사의 일생>에서 재인용)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했다는 이 말은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검투사 경기...
누가 나를 무시할까 두려운가제1236호 “아버님 어쩌죠?” 문화방송(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의 사위 정보석은 이 말을 달고 산다. 장인 회사에서 겨우 한자리 차지하고 눈칫밥으로 사는 이 사람이, 가족 엠티(MT)라도 준비하면 대형 참사가 벌어진다. 경기도 광주로 가야 하는데 광주광역...
전설의 퀸, 추억을 깨우다제1236호 혈기 넘치는 고등학생 시절, 나는 퀸을 좋아하지 않았다. ‘헤비메탈 키드’였던 나는 거칠고 강렬한 음악만을 좇았고, 말랑하고 팝다운 음악은 괜히 무시하곤 했다. 같은 영국 밴드 중에서 헤비메탈 장르의 탄생에 막대한 기여를 한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은 우상처럼 떠받든 반면, 귀에 꽂히는 멜로디 위주의 음악...
행복을 포기해야 행복이 온다제1235호정은 연의 입원 소식을 들었다. 알코올중독이란다. 대학 시절 영화를 이야기하는 연의 눈빛은 낯설고 섬뜩한 열기로 불타곤 했다. 연은 시나리오작가가 되겠다며 학교를 중퇴했다. 정은 연을 흠모했으나 그보다 자주 주눅 들었다. 정은 연처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건만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정은 부모...
<우리는 중국이 아닙니다>외 신간 안내제1235호우리는 중국이 아닙니다 알렉 애쉬 지음, 박여진 옮김, 더퀘스트 펴냄, 1만8천원 중국의 ‘바링허우’ 세대(1980년부터 출생한 중국의 외동아들·딸들로 ‘소황제’로 대접받고 자란 세대) 6명의 삶을 추적했다. 서로 다른 지역과 배경에서 나고 자라 30대에 접어든 이들의 성장...
정확한 언어의 힘제1235호전세계적인 ‘미투(#MeToo) 운동’의 확산은 ‘나도 당했다’는 용기 있는 고백과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봇물처럼 터져나온 개별 사건들의 밑바닥에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있음이 드러났고, ‘저항의 목소리’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요구한다. 미투는 저항과 희망의 언어로 힘을 갖게 됐다. ‘맨스플...
들어라, 국가여제1235호 부산 형제복지원(1975~87)에서 겪은 제 이야기는 <한겨레21>에서도 기사로 소개된 적이 있어서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인권운동가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지식인도 아닙니다. 국가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활동가이고, 그 전에 스스로 국가폭력이라는 담론을 마주하고 선 생존...
엄마, 슬픔만큼 기쁨이 찾아올 거야제1235호 미국으로 떠나기 전 집주인인 그녀가 계단을 올라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발목의 힘줄이 참 예뻐.” 발목의 힘줄을 누군가 예쁘다고 말해준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수년 전 처음 만난 날부터 나의 구석구석, 내 안의 무용한 아름다움을 발견해준 사람이었다. 나의 실수와 부끄러움조차 괜찮다고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