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냄새 ‘솔솔’ 의뭉스러운 39살 낡은 주택제1238호 “실제로 누나를 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하곤 너무 달라요.” 벨을 누르기 전 건축가 홍승석이 살짝 귀띔했다. 그는공사가 끝나고부터는 집주인 곽현화를 ‘누나’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클릭하는 코미디언 곽현화의 이미지는 핏이 ‘쩌는’ 운동복을 입고 덤벨을 들거나 짱짱한 힙라인을 강조하는 자세를 잡는 모…
최소한 한 명의 ‘공감자’제1238호지난 10월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이 세 권이나 출간됐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으로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과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가 나왔다. 옮긴이는 ...
학교, 조건부 인간이 태어나는 곳제1238호 한 강연을 듣다 부아가 치밀었다. 강연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1시간 30분짜리 강연인데 2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 강사는 제 흥에 취했다. 나는 고개를 외로 틀고 눈을 흘겼다. “그만해! 듣기 싫어!” 속으로 막말 중이다. 누가 됐건 내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길게 말하면 분통이 터진다. ...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요제1237호최근 서점가를 점령한 건 심리 도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 ‘나’를 다독이며 내가 행복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책들의 판매 부수가 증명하는 건 역설적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진짜 사람 냄새가 난다제1237호 모든 그럴듯한 말이 그렇듯, 언제부터인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람 냄새’라는 표현은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아무 데나 붙어 쓰이곤 한다. (비슷하게 막 쓰이는 표현으로 ‘걸크러시’와 ‘브로맨스’, ‘아재미(美)’ 따위가 있다.) 요즘 ‘사람 냄새’를 주로 내세우는 곳은, 첫째 연예인 가족의 ...
영혼이 바닥을 칠 때, 나를 구원하는 것들제1237호 ‘타인의 질문에 대답하는 마음 자세’야말로 마흔 이후 가장 많이 바뀐 내 모습 중 하나다. 예전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심하게 긴장했다. 멋진 대답을 쥐어짜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가, 오히려 점점 스텝이 꼬일 때도 많았다. 지금은 편안하게 내가 가진 가난한 생각의 창문을 그저 열어둔다. 이젠 ...
‘뻘짓’이었더라도제1237호 2005년 11월21일 <세 번째 수능> 30시간 뒤면 아주 재미있는 곳으로 간다. 죽도록 싫다면서 3년이란 시간을 목매달고 있는 곳이다. 이번엔 조금 이상하다. 즐거울 것 같다. 모르는 문제를 만나도 반가울 것 같다. 어려...
여자 헤롯, 여자 햄릿 젠더프리 캐스팅제1237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컴퍼니>(메리앤 엘리엇 연출)는 주인공으로 여성 바비(Bobbie)를 내세웠다. 1970년 초연한 <컴퍼니>는 미국 뉴욕에 사는 35살 인텔리 남성 바비(Bobby)와 그의 다섯 친구 커플을 통해 복잡한 ...
때가 왔다 제1237호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만 3살 큰아이가 유튜브를 보여달라 조르는 날이. 유튜브를 보여주는 일, 아빠는 내키지 않았다. 어른들끼리 환담할 동안 아이 혼자 휴대전화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다른 집 모습이 영 마뜩잖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되도록 때를 늦추고 싶었다. 유튜브에 대해 나는 감정...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제1236호한국인 아내와 한국에 살면서, 스페인어로 읽고 쓰는 글쟁이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MBC 에브리원에서 만든 예능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등장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처럼 한국 문화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돌아가는 모습과는 매우 다른 삶일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