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르가즘’ 오디오북이 온다제1244호 유 생원만 통나무 목침을 베고 <조자룡전>을 보고 있는 것이 유달리 눈에 띈다. “유 생원, 이야기책은 왜 속으로만 보슈?” 점쇠가 묻는 말에 그는 목쉰 소리로 겨우 알아들을 만하게, “목이 잔뜩 쟁겨서 그러네” 하고 미안하단 의미로 소리 없이 웃는다. 다른 때 같으면 유 생원...
공산주의를 삐라로 묻어버려라제1244호 한 여인이 거울을 바라보며 입술연지를 바르고 있다.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이 예사롭지 않다. 여인은 군복 같은 옷을 입고, 좁은 공간 왼쪽에 폭탄 여러 개가 세워져 있다. 좀더 세심히 들여다보면, 들고 있는 거울도 여성들이 일상에서 쓰는 것이 아니다. 비행사가 조난당할 때 연락하기 위해 쓰는 ...
<무명의 말들> 외 신간 안내제1243호무명의 말들 후지이 다케시 지음, 포도밭출판사 펴냄, 1만3천원 한국역사를 연구하는 일본인인 저자는 소수자 시선으로 논쟁적 글을 발표해왔다. ‘살아 있는’ 글쓴이는 ‘이 책은 유고집’이라고 서문 첫 문장에 적었다. 유고집처럼 가필 없이 발표글을 책으로 묶었고, 이후 자신은 ‘무명’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메뚜기 찾아 사막에 ‘체크인’제1243호지식과 교양을 생산한 대가가 ‘무수입’으로 이어지는 일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파브르를 존경해 곤충학자의 꿈을 꿨던 마에노 울드 고타로도 그랬다. 학부에서 곤충학을 전공하고 사막메뚜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정규직 연구자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고생 끝에 박사 …
소꿉놀이도 인강으로 제1243호“김태권 작가님은 이번달도 ‘핑크퐁’이죠?” 만화를 그리고 연구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팟캐스트 <궁극의 캐릭터>를 녹음한다. 어떤 콘텐츠를 즐겼는지 묻는 근황 토크 시간. 내 대답은 반년 넘게 <핑크퐁 상어가족>.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대답을 했다. “얼...
전우의 가슴을 밟고 싶지 않기에 제1243호 러시아 록의 영웅 빅토르 최를 들어봤는가? 아마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럼 빅토르 최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아마도 깊게는 모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새해 1월3일 개봉하는 영화 <레토>가 반가운 건 그래서다. 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는 빅토르 최를 ...
쉽게 부서지는 네게, 은영의 미소를제1243호 “말을 진짜 못해요. 그래도 오늘 인터뷰 최선을 다할게요.”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말하는 그를 찍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에 놀란 토끼눈을 하다가 멋쩍은 듯 또 웃었다. 웃음이 많고 말투에는 겸손이 묻어나왔다. 12월17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소설가 최은영(34)씨다. ...
비니제1243호 압착기와 컨베이어벨트 사이에 목과 가슴이 끼었어. 아아, 소리를 질렀어. 아아, 온 힘을 다해 내질렀어. 그런데 소리가 울리지가 않아. 누구도 없어. 너무 아픈데 너무 조용해. 검붉은 피가, 뚝, 뚝, 파란 작업복, 파란 기계, 초록색 바닥으로 흘러내려. 비릿한 냄새가 나. ...
예술영화 대신 ‘페파피그’제1242호 큰일이다. <씨네21> 연말 기획으로 올해의 영화를 꼽아야 하는데 도통 본 영화가 없다. 한국영화 베스트5는 기사를 배당받아 시사를 챙겨본 작품이 여럿 있어 대충 구색을 갖췄다. 외국영화는 더 심각하다. 동료들 사이에서 올해 최고라 평가받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70년생 개띠들에게제1242호 해가 바뀌면 나이 앞자리가 달라지는 70년생 개띠들이 주변에 많다. 나는 71년생 돼지띠인데 학교를 일찍 들어가긴 했지만(학창 시절 친구들 소식은 도통 모른다. 내 친구 ‘황소’야 연락 좀 다오), 우연이다. 개돼지끼리 통하는 게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출판계나 공연계 등 여러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