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최’를 다룬 영화 <레토>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YB(윤도현밴드)는 1999년 이 노래를 번안해 발표했다. 윤도현이 바꾼 우리말 가사는 이렇다. “나의 팔에 새겨 있는/ 나의 혈액형 나의 군번아/ 싸움에서 나의 영혼을 지켜다오/ 여기 싸늘한 이 땅에서/ 나의 피를 묻으리/ 행운을 빌어다오/ 나의 행운을 빌어다오/ 빅토르의 노래가 들린다/ 싸늘한 그의 무덤 앞에/ 더 많은 빅토르가 모여/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지금도 그의 노래가/ 끝나지 않은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빅토르 최가 30년 전 불렀던 노래는 지구촌 어디선가 전쟁이 끊이지 않는 2018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빅토르의 재능을 알아본 마이크의 비극 지금껏 풀어놓은 내용은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니다. <레토>는 이런 내용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영화가 다루는 건 1981년 여름, 그 짧은 기간이다. ‘레토’라는 제목부터가 러시아어로 ‘여름’이라는 뜻이다. 당시 빅토르 최는 이제 막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19살 풋풋한 청년이었다. 영화는 딱 그 단면을 잘라 아련하고 쓸쓸한 흑백 영상으로 펼쳐놓는다. 이야기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밴드 주파크를 이끄는 록스타 마이크, 그의 아내 나타샤, 그리고 음악가 지망생 빅토르 최가 그들이다. 마이크와 나타샤, 음악 동료들이 한여름 바닷가에서 놀고 있을 때 누군가의 초청으로 빅토르 최가 합류한다. 그 자리에서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들은 마이크는 한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마이크는 빅토르 최의 멘토를 자처하며 그를 정식 록클럽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빅토르 최에게 매력을 느낀 나타샤는 그에게 다가가고, 빅토르 최 또한 나타샤에게 끌린다. 마이크는 나타샤로부터 얘기를 듣고 둘의 관계를 용인해주면서도 홀로 괴로워한다. 요약하자면, 예술과 사랑과 시기로 얽힌 세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빅토르 최가 아니라 마이크라고 생각한다. 그는 서구 록음악을 끊임없이 동경하면서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나간다. 정식 록클럽에서 허가된 공연만 하고, 관객은 경직된 자세로 앉아 소리도 제대로 못 지른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빅토르 최는 정해진 틀이 없는 예술가다. 아무렇게나 막 쏟아내는 것 같은데, 가사와 선율은 누구보다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마이크는 빅토르 최를 지원해주면서도 묘한 질투를 느끼는 듯하다. 아내 나타샤까지 빅토르 최를 원하니 그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그의 처지가 바닥까지 곤두박질쳤을 때 흐르는 루 리드의 노래 <퍼펙트 데이>는 역설이다. 내게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마이크 나우멘코라는 인물이 궁금해서 알아봤으나 정보가 많지 않았다. 1955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으며, 전설적인 록밴드 아크바리움을 거쳐 1981년 밴드 주파크를 결성했다는 정도가 기본 정보다. 빅토르 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당대 최고 밴드 아크바리움의 공연에 빅토르 최의 밴드가 출연하도록 추천하기도 했다. 결국 아크바리움의 리더 보리스 그레벤시코프도 빅토르 최의 후원자가 됐다. 빅토르 최가 숨진 이듬해인 1991년 마이크도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숨졌다. 그의 나이 36살이었다. 체포된 감독 그리고 음모… 빅토르 최에 대한 자료는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레토>를 계기로 나는 빅토르 최를 좀더 알게 됐다. <레토>를 연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영화 촬영 도중 공금횡령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돼 가택구금을 당했다. 이를 두고 빅토르 최에 관한 영화 제작을 방해하려는 공작이라는 의혹도 일었다. 지금의 러시아라면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나는 언젠가 빅토르 최의 본격적인 활동을 다룬 영화를 보고 싶다. 2018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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