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 방송된 tvN 에 등장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미용실의 주민들. 퀴즈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낳았다. tvN 화면 갈무리
TV에 안 나오는 사람 구경 이를테면 12살의 고민은 방학이 너무 짧다는 것이고, 13살의 관심사는 ‘남사친’이며, 고3의 꿈은 빨리 졸업해서 운전도 배우고 술도 마시는 것이다. 유재석의 이름은 모르지만 “여기, 저, 코미디히!”라며 반기던 할머니는 40년 된 동네 미용실에서 곱슬곱슬 파마를 말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한 다음에 퀴즈는 “안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해 잊지 못할 명장면도 연출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들을 알아가다보면 퀴즈쇼에 몰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답을 맞히면 가까이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바로 뽑아주는 상금 100만원은, 인생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엠시를 꿈꾸는 한 청년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잡아보는 큰돈”이기도 하다. 독서와 산책을 사랑하는 교사가 제자 수십 명의 응원에 둘러싸여 있을 때, 40년째 같은 자리에서 노점을 하는 노인이 와이키키 해변이란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할 때, 공부가 어려워질 테니까 중학생이 되기 싫다는 초등학생이 상금을 받으면 연신내에 가서 귀걸이를 사고 싶다며 자신이 아는 가장 멋진 번화가의 이름을 댈 때, 불과 몇 분의 시간 동안 정들어버린 그들이 꼭 퀴즈를 맞히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러니 연습실에서 먹고 자며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하는 전남 여수 출신 가수 지망생 청년이 정답 ‘서유기’를 ‘신서유기’라고 말하는 바람에 앰프(증폭기) 사서 공연하겠다던 꿈이 날아가는 순간, 어찌 그와 함께 진심으로 탄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타인의 행운이 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는 데는 ‘퀴즈’라는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타인의 사적인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하지 않고, 저녁 6시가 되면 촬영을 종료하는 <유 퀴즈>의 방식이나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촬영을 마친 뒤 떠난 출연자들의 후일담을 짤막하게 전하고, 정답을 맞히지 못한 출연자에게 재미있는 아이디어 상품을 선물해 분위기를 풀어주며, 준비된 선물이 잘 맞지 않는 연령대의 출연자에게는 쓸모 있을 만한 선물을 덤으로 챙겨주는 제작진의 꼼꼼한 배려도 인상적이다. 내년 봄 꼭 다시 오기를 가족의 소중함, 연인들의 행복, 친구와의 우정, 청춘의 꿈과 고민, 노인의 지혜, 노동의 신성함, 노포에 얽힌 추억,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등 전통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면에서 <유 퀴즈>는 요즘 보기 드문 공익 예능이자 ‘진정한 보수’(라는 것이 실제 있다면)의 가치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12부작으로 예정됐던 <유 퀴즈>는 곧 막을 내린다. 경쟁이 치열한 수요 예능 프로그램 사이에서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혹한기가 지난 뒤 내년 봄에는 다시 돌아오기를, 그때는 서울이 아닌 더 많은 지역에서 “유 퀴즈?”를 들을 수 있기를.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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