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함께 둘레둘레 걷는 길제753호 인월(引月)에서 밤을 맞는다. 늦은 시간 창을 밝히는 빛에 창문을 여니 사위가 환하다. 반달임에도 구름 한 점 없어 빛은 거침이 없고, 산골임에도 너른 들녘은 여과 없이 달빛을 받아들인다. 1380년,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성계도 저 달을 만났을 것이다. 이성계는 고려의 운명까지 뒤흔들 정도로 대규모로...
윤이상을 음악 자체로 즐기라제753호 슈투트가르트의 현대미술관은 웅장하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대신 아늑하고 정다웠다. 현대건축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미술관 옆에는 똑같은 콘셉트로 지은 자매 건물이 있었다. 독일의 명문 음대인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였다. 건물 안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내 귀에 별안간 “피리”라는 한국어가 들렸다. 내 옆으로 …
코미디 빙하기에 ‘구느님’이 납시었다제753호아내가 들이닥쳤다. 아니, ‘구느님’(<아내의 유혹> 주인공 구은재를 하느님에 빗대는 말)이 납시었다. 기진맥진한 <웃찾사>, 그래도 간판인 ‘웅이 아버지’에 <아내의 유혹>의 장서희가 극중 모습으로 등장했다. 또 어떤 기적을 내리시려나? 이런, 이건...
[KIN] <힘들 땐, 품바> 외제753호힘들 땐, 품바 국내 최장기 연극 <품바>, 기록은 계속된다 국내 최장기 연극 <품바>가 돌아온다. 1981년부터 2003년까지 총 4500여 회 공연된 <품바>는 여러 해 동안 관객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이다. 2...
꼬마와 여성의 몸으로 독일을 읽다제753호“꼬마”(Kid), 연인들 사이엔 ‘부적절한’ 호칭이다. 부적절한 호칭엔 부적절한 관계가 전제돼 있다. 36살의 한나(케이트 윈즐릿)는 15살 소년 마이클(데이비드 크로스)를 “꼬마”라고 부른다. 꼬마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한나의 눈은 떨리지만, 한나의 손은 망설...
느려도 괜찮아제753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은 런던 외곽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조각가로, 전형적인 영국의 50대 중년 남자다. 두 달 전, 집 계약을 연장하려고 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음성메시지 녹음으로 바로 넘어갔다. 대략의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래도 전화가 없기에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
게으름만 빼고, 모든 일에 게을러지자제753호 마르크스 자본론에서 상품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노동이다. ‘노동가치설’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은 신성시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제1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에 참여했던 폴 라파르그는 이 말에 반대한다. ‘노동하지 않을 …
[새책]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외제753호<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이붕언 지음, 윤상인 옮김, 동아시아(02-757-9724) 펴냄, 1만8천원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 3세. 1980년부터 3년간 한국을 돌며 촬영한 사진으로 첫 개인전(‘애호’)을 열고 ‘본명 선언’을 했다.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뱀은 땅을 어떻게 파나요?제753호 2009년 들어 건강해지려 집 뒷산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땅바닥에 뱀이 들어가기 적당할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눈에 띄더군요. 그러고 보니 뱀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로 알고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뱀은 땅굴을 어떻게 파나요? 오직 긴 몸뚱이 하나만 가진 그 동물이 ...
[블로거21] 한국인 같기도제753호 사실은 클럽이 아니지만, 클럽이라고 해두자. 바람도 뜨거운 2009년 1월 타이 방콕의 클럽에서 어떤 타이 청년이 이리로 와보라고 손짓을 했다. 가까이 가자 물었다. “어디서 왔니?” “한국.” 그리고 나를 보고 웃으며 옆에 앉은 중국인 청년에게 말하길, “봐라. 얘는 타이 사람이라면 타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