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편에서 쓴 정신병동제1067호47살의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심각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그는 타인과 기본적인 대화조차 버거웠다.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지만 아무도 그를 따스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모두가 조금 이상해 보이는 그를 거부했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정신병동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
나를 기억해줘제1067호 <테스>로 유명한 19세기 영국 소설가 토머스 하디의 좀 덜 알려진 소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에는 헨처드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런 사람도 시장을 하는구나 싶은, 정말 별 볼일 없고 제멋대로며 유치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좋아해도 무조건적으로 좋아했고 누군가를...
산소호흡기가 된 기내식제1067호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한동안 같이 있어야 하는 비행에서 옆좌석에 누가 탔는가는 그 시간의 고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장거리 비행에서는 말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옆자리에 아무도 타지 않는 것이긴 하다. 몇 년 전 동북아의 한 대도시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기내에서의 일이다. ...
뜯을 때는 좋았는데 갈 길이 아득하네제1067호곤드레밥은 뜯어온 다음날 해먹는 것이 제일 맛있습니다. 묵나물을 삶아서 해먹기도 하지만 큰산나물이 한창일 때 곤드레가 제일 맛있고, 다른 여러 가지 나물도 제철이라 가장 맛있습니다. 잡냄새가 없고 독성이 없는 곤드레를 저녁에 삶아 물에 담가놓았다 아침밥을 합니다. 나물을 많이 넣고 밥을 할 때 역한 나물 냄새...
이런 버섯같은 프로그램이라니!제1067호 버섯은 참 묘하다. 쇠고기랑 볶으면 고기 맛이 나고, 해산물과 비비면 바다 냄새가 난다. 상큼한 채소인 척하다 코린 치즈로 변하며 온갖 재료와 농밀하게 노닌다. 나의 TV엔 이런 버섯 같은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그 주인공도 인적 드문 산속에 숨어 산다. 그의 진심을 캐내려면 사흘쯤은 속세를 ...
최경엽전(傳)제1067호1919년 남해 먼 바다 거문도. 그중 동도(거문도는 서도·동도·고도 이렇게 세 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죽촌리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몇 해 먼저 태어난 언니 이름은 최모방이었다. 모서리에 덧대어 지은 방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둘째딸도 그 방에서 태어났는데 또 모방이라고 할 수는 없어...
구남친의 새여친 소식을 들었다제1067호몇 달 전 새벽까지만 해도 내가 자는지, 안 자는지 궁금해하던 그 녀석에게 새 여자가 생겼단다. 그놈의 페북이 사달이다. 내가 알 수도 있다며 자꾸만 구남친을 눈치 없이 (페북이 친구로) 추천해댈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그 녀석과 어떤 여자(나보다 어려 보이는)가 다정하고 말갛게 웃고 있는 사진...
대리운전자 킨제1067호 킨은 새터민이다. 어떤 이는 탈북자라고도 부르고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킨의 직업은 심야의 대리운전이다. 킨은 남으로 넘어와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말투로 인해 번번이 적응에 실패했다. 대리운전은 최소한의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몇 년째 버틸 만하다. 손님과 말을 섞을 이유도 없고 목적지를 알려주면...
인간 주제에 원자력이라니제1067호시인이 7번 국도를 걷는다. 소설가 김연수에게 7번 국도는 청춘의 혼란스러움을 받아준 길이었다. 시인이 이 길을 걸은 이유는 핵발전소를 찾아서다. 7번 국도에는 핵발전소가 줄줄이 서 있다. 운전 중인 원자력발전소 23기 중 울진·경주·부산 세 지역에 17기가 있다. 신혜정 시인이 7번 국도를 방문한 뒤 낸 책 ...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외 신간 안내제1066호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펴냄, 1만5천원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서유기> <돈키호테> <그리스인 조르바> <열하일기> 등을 ‘로드클래식’으로 명명한다. 길 위에서 길을 찾고 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