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하여, 자 건배!제1066호퇴각 중인 한 부대가 노상에 쓰러져 있는 아군 주검 몇을 발견했다. 폭염과 탈수와 허기로 쓰러진 듯한 그들의 얼굴은 이미 까마귀처럼 검었는데, 그중 하나의 맥이 아직 간당간당 붙어 있었다. “어이, 사끄레씨앙을 빨리!” 증류주의 일종인 그 술을 한 모금 흘려넣자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던 병사의 눈이 떠졌...
일중독은 마약중독과 다를 게 없다제1066호말하지 말 것, 느끼지 말 것, 소란을 피우지 말 것, 강하게 살 것, 착하게 살 것, 바르게 살 것, 완벽하게 살 것. 어느 수도원의 규칙이 아니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서비가 정리한 알코올중독자가 있는 가정의 규칙이다. 그런데 알코올이든 섹스든 뭔가에 중독된 경영자가 있는 조직은 알코올중독자의 집처럼 변한다. 솔…
임신이라는 복병제1066호“육아에 대해서는 네가 주도적으로 했으면 해.” 남편의 말에 순간 벌컥 화가 났다. “왜 내가 주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라”는 말로 시작한 나의 반격은 한참 이어졌다. 얘기하다보니 그동안 쌓인 서운함까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태교에 신경 좀 쓰라며 나를 타박하던 일이나 한동안 계속 새벽 ...
도쿄 와서 일만 하다 가려고?제1066호전철, 인터뷰, 전철, 인터뷰로 이어지는 강행군. 출장 중에 ‘꿀’ 같은 반나절이 빈다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① 숙소에서 쉬기 ② 인터뷰 녹취 풀기(녹취를 푸는 건 밥 먹고 설거지하기 싫은 것과 같다) ③ 캐리어에 든 책 읽기(안 읽으면서 출장 때마다 왜 챙길까) ④ 관광. 먼저 2번....
네 맛대로 먹어라제1066호 쌀뜨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넣고 잔멸치와 건새우 한 줌을 넣어 끓인 뒤 껍질 벗긴 아욱을 넣고 한소끔 끓여 아욱의 숨을 죽인다. 아욱이 흐물흐물해지면 향신즙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하고 약한 불에 5분 정도 끓인 다음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식을 때까지 하룻밤을 기다린다. ...
의느님, 성형의 힘으로 치유하사…제1066호 신데렐라 이야기는 국내 대중문화에서 가장 힘이 센 서사다. 우리 사회에서 ‘인생 역전’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는 이 서사는 드라마에선 신분 상승 로맨스로, 예능계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타 탄생기로 변주되며 불멸의 히트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요즘 전성기를 구가하는 국내 메이크오버쇼 프로그램들은 이 ...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도시?제1066호 20대 후반,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힐 때마다 뭔가 불편한 기류를 느꼈다. “바닷가 가까이 살아서 좋겠네요”라는 한가한 농담부터 “인천이 아니라 인촌 아니냐”는 비아냥에 이르기까지 주로 서울 토박이의 지역 차별성 발언에 마음이 언짢았다. 그 무렵, 인천공항 명칭을 ...
전파사 탕제1066호 탕은 요즘 사설 글쓰기 창작 아카데미학원에 다닌다. 시를 배우기 위해서다. 탕은 아내가 잠든 밤 조용히 혼자 일어난다. 밥상을 펴고 앉아 시를 써보기 위해 끙끙거린다. 깎아놓은 연필심을 종이에 꾹꾹 눌러가며 시심을 담은 단어를 고른다. 벽으로 돌아누워 잠든 아내의 숨소리가 부드럽다. “아내의 저 ...
다 읽지 못하면 돌아가지 못하리제1066호*이 미스터리의 결론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6월6일 현충일 정오를 10분 지나 서울 청량리를 출발한 무궁화호 제1635열차 일반실 5호칸. 열차칸 정중앙, 돌려서 마주 보게 만든 자리에 8명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열차에서 에어컨을 틀더라도 창문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더운 날씨...
즐겁게 ‘털리고’ 싶어라제1066호 “마니아들의 주머니를 털기가 제일 쉽죠.” 독자 교정 이벤트에 참가한 남극펭귄이 말했다. 참가자 전원이 동의해 자신의 돈이 털린 기억을 ‘즐겁게’ 회상했다. 저녁 자리는 이들이 ‘털린’ 기억을 풀어놓고 ‘어디에 털릴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미스터리 팬들은 적극적이다. 서울 관악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