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히로의 아버지처럼 변한 건 아닐까제1078호 지브리 스튜디오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13년 은퇴를 선언하면서 현재는 개점휴업 상태지만, 1985년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지브리는 세계 애니메이션계를 주름잡았다. 미국의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는 얼마 전 지브리의 베스트10을 선정했다. ...
그들은 ‘세상의 끝’에 선 증류소에 가보아야 한다제1078호자전거는 5시간째 사방팔방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 황량한 암산 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스케줄대로라면 이미 목적지인 아벤저그 증류소에 도착할 무렵이지만, 이제 고작 반이나 왔을까 말까였다. 시월 하순에 시작되는 태풍 시즌에 헤브리디스제도를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는 현지인의 충고에 따라 얼추 한 달…
내일은 무단휴업일입니다제1078호한낮에 내리쬐는 해는 뜨거워도 여기저기서 일어난 바람은 그늘진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계절이 되었다. 여름 내내 튀기고 볶는 열기를 견딜 수 없어 에어컨에 의지하며 보내다 얼마 전 태풍이 지나간 날부터 앞뒷문을 열어두고 밖에서 나도는 바람을 들여 열기를 식힌다. 어느 날인가 그 바람을 타고 귀뚜라미 한 마리가…
청첩장 같은 ‘이혼장’이 있었으면제1078호시골집. “아버지, 저 이혼하겠습니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혼할 거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께 이혼 사실마저 숨긴다면 진짜 불효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고개 숙인 아들을 본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셨다. 아버지는 나중에 말씀하시길 그럴 ...
<확률가족> 외 신간 안내제1077호확률가족 박재현·김형재 엮음, 박해천 기획, 마티 펴냄, 1만6천원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인 에코세대의 ‘우리 가족의 아파트 이야기’. 책의 아파트에 관한 사례는 구체적이고 통계는 광범위하다. 1977년생 ‘허쉬’의 가족은 재개발을 믿고 2006년 길 건너편 롯데아파트 45평형을 5억61...
기자보다 더 ‘객관성’을 고민하다제1077호2002년 소개된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만큼이나 많은 사람에게 내용과 기법적인 측면에서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그는 총알과 화염병이 오가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그리기 위해 안락한 책상에 앉아 신문 기사를 검색하기보다는 주머니를 털어 지구 반대편 ...
물방울과 티끌의 일제1077호뜬금없는 고백이지만 원래는 ‘음양의 음영’이 아니라 다른 타이틀로 이 지면을 맡으려고 했다. 지난 4월, 연애 칼럼을 제안받고서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물방울과 티끌의 일’이었다. 국어사전에서 연애를 찾아보면,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남녀’로 한정한 것이 다소 찜찜하지만)이란 의미 아래 또 다른…
떠나라, 그들처럼!제1077호리모컨을 돌리다 낯익은 청년들이 네팔 포카라 호숫가를 거니는 모습을 보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멀리 마차푸차레산 정상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나는 무언가 떠올라 신문사 사이트에서 내가 썼던 여행기를 찾아냈다. 신기하게도 정확히 20년 전 나도 거기에 있었다. ...
엄마는 종견장을 떠났을까제1077호 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늘 그렇듯 오늘 아침도 부산하다. 잠이 너무 깊어 늘 천지를 개벽할 알람을 맞춰놓고 자는 집주인1이 허둥지둥 나가고 나면 아기와 집주인2의 두 번째 아침이 시작된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않은 채 냉장고에서 음식을 주섬주섬 꺼내 아기 밥을 먹이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하루종일 밤을 줍고 온종일 밤을 먹고제1077호 파란 하늘에 건들바람이 불고 여기저기서 툭툭 투두툭 알밤이 떨어집니다. 학교를 전폐하고 하루 종일 밤을 줍고 하루 종일 밤을 먹습니다. 마당에는 짚봉생이, 맷방석, 다섯 말들이 통나무 함지, 서 말들이 함지를 즐비하게 늘어놓고 각자 주운 밤을 따로 모아 팔아 10분의 1은 옷도 사고 학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