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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떠나라, 그들처럼!

어떤 여행 프로그램보다 ‘진짜 여행’의 맛을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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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04 16:38 수정 : 2015-09-0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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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을 돌리다 낯익은 청년들이 네팔 포카라 호숫가를 거니는 모습을 보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멀리 마차푸차레산 정상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나는 무언가 떠올라 신문사 사이트에서 내가 썼던 여행기를 찾아냈다. 신기하게도 정확히 20년 전 나도 거기에 있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 난생처음 해외여행에 나섰던 때다. 그때를 떠올리자 그들이 더욱 부러워졌다. 나 역시 포카라에 있었지만, 그들처럼 동네 이발소에서 현지식으로 머리를 깎아보지는 못했다. 산골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레썸삐리리”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다.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경험이다. 놀아본 놈이 놀고, 떠나본 놈은 여행의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숱한 여행 프로그램 중에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그 방법을 잘 가르쳐주는 건 없다.

JTBC 제공

여행은 우리에게 낯선 풍광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살고 있던 익숙한 세계를 떠나 다른 종류의 삶을 압축적으로 살아보게 한다. TV 여행 프로그램들이 그 스펙트럼을 잘 보여준다. <로맨스의 일주일>의 예지원, 지나는 외국인 꽃미남을 만나 로맨틱한 풍광 속에서 두근두근한 썸을 즐긴다. 이 여행은 짜릿한 판타지다. 현실 속에서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꽃보다 할배>의 이서진은 무거운 짐을 든 70대 할아버지들을 이끌고 프랑스 파리의 전철역을 헤맨다. 이 여행은 살 떨리는 서바이벌이다. 타이 방콕은 한국인들에게는 가장 평범한 여행지다. 하지만 <보내줄 때 떠나라! 남자끼리>의 정준하·서지석에게는 극한 체험의 장소다. 스스로 값싼 숙소를 구하고 방송용 볼거리를 만드는 일은 지독한 난제다. <꽃보다 청춘>은 청년들의 풋풋함이 즐거웠지만, 배낭여행 초보를 바라보는 답답함의 연속이기도 했다. 는 더욱 아슬아슬했다. 연예인의 유명세로 전전하는 일정은 자칫 민폐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다르다. 그들이 중국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친구들 여행 좀 다녔구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좌충우돌 숙소를 찾아가는 과정은 어수선했다. 그러나 짐을 풀자마자 동네 시장에서 야식을 즐긴다. 호텔 주인이나 다른 여행자들과 쉽게 친구가 된다. 이들은 20대가 대부분이지만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며 외국 생활을 하고 있다. 전문 탐험가 제임스 후퍼가 아니라도 여행자로서 낯선 나라를 즐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해왔던 것이다. 반면 다른 프로그램의 연예인 출연자들은 같은 연령의 일반인들보다도 독립적인 여행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멤버들이 전문 여행가 집단인 건 아니다. 실수도 많이 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한다. 특히 장위안이 보수적인 입장으로 여행 풋내기의 포지션을 수행한다. “처음이니까 큰 도시 가고 싶어.” 이탈리아를 간다면 로마의 콜로세움은 꼭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지인 알베르토의 안내 코스는 다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외국 관광객을 피해 놀러가는 곳, 시골의 노천 온천으로 데려간다. 출연자들의 부모님 집을 방문하는 코스 자체가 보통의 여행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경험을 선사한다. 역시 장위안은 투덜거린다. “내 친구의 집은 다 시골이다.” 나로서는 시골이어서 정말 고맙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본거지인 <비정상회담>은 선정적 주제에 어설픈 결론으로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나는 <비정상회담>의 토론보다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고향 방문에서 더 많은 걸 배운다. 벨기에의 줄리안 부모님은 청소년의 연애와 피임에 대한 열린 생각을 보여주고, 캐나다의 기욤은 이혼한 부모님 집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반면 네팔의 수잔은 카스트제도를 지키는 대가족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다른 생각이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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