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 잊혀지고 감춰지는 어떤 삶과 꿈제1093호유년 시절 내가 부모 말을 잘 듣지 않거나 고집을 부릴 때면 내 부모는 당시의 다른 부모들처럼 다리 밑에서 나를 주워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서울 잠실에 살았던 탓에 늘 잠실 다리가 입양 장소가 되었다. “잠실 다리 밑에서 널 주워왔지. 잠실 다리 밑에 네 친엄마가 살고 있어.” 야단을 칠 때마다 잠실 다리...
스타워즈, 어렵지 않다고 전해라제1093호 2015년 12월17일 개봉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예매율 40%로 1위를 차지했지만, 일주일 동안 관객 126만명을 동원하며 2위에 머물렀다. 1위는 한국 영화인 <히말라야>. 지금까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10만원에 가상현실 띄워봐요제1093호 2012년 12월20일. 언론 역사에 눈사태가 일어났다. <뉴욕타임스>가 ‘스노폴’(Snow Fall)을 공개한 날이다. 스노폴은 언론 지형도를 단숨에 밀어냈다. 너나 할 것 없이 ‘인터랙티브 기사’를 기웃거렸고, 저마다 이것이 혁신이노라 외쳤다. 돌아보자. 미디...
선과 악의 평범성제1092호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12월15일과 16일에 걸쳐 1차 청문회를 진행했다. 청문회에서 해경 책임자들은 구조가 지연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후에 자신에게 돌아올 비판과 처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듯 그들은 ‘책임’이라는 말에서 최대한 ...
<사표의 이유> 외 신간 안내제1092호사표의 이유 이영롱 지음, 서해문집 펴냄, 1만4500원 이 책은 가슴속에 사표 한 장씩 품고 있는 이 시대 모든 ‘미생’들의 보고서다. 10년 안팎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사한 뒤 삶의 전환을 이룬, 혹은 이뤄가는 30~40대 11명을 인터뷰했다. 노동만이 가득한 ...
나는 너를 몰라도 된다제1092호 올해를 지배한 책은 단연 <미움받을 용기>다. 지난 2~12월 41주 연속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만 80만 부 넘게 팔리면서 심리학 분야뿐 아니라 전체 책 판매 기록을 다시 썼다. 저자인 일본 심리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책은 그 뒤 한국에서 14...
한국문학의 ‘황금 그물’을 만나는 지름길제1092호김현(1942~90·본명 김광남)은 죽었다. 문학비평가로서 그는 “한글로 사유하며 한글로 글 쓴 첫 세대 비평가”였다. 문장가로서 그는 ‘김현체’라는 문체의 고유명사를 얻은 사람이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서 그는 짜장면 배달부가 그릇을 찾아갈 때 연구실 밖에서 배웅을 해주던 이였다. 날마다 시를 읽는 독자로서 ...
동치미 익어가듯 관계도제1092호 시간 날 때면 전북 완주군 내의 작은 마을들을 마실 삼아 찾아다니는데 재작년 이맘때 완주군 소양면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었다. 할머니는 마당에 따로 만들어둔 아궁이에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있었다. “내일 교회 가야 혀서 머리 좀 감으려고 물 끓이고 있다”는 할머니의 집은 정갈...
한결같이 한심해서 사랑한다제1092호 <심슨 가족>과 동시대를 살고 있어서 좋다. 그렇게나 웃긴 시리즈물과 함께 자랄 수 있다니 말이다. 1989년 첫 회를 방영한 <심슨 가족> 시리즈는 지금까지 27개 시즌을 내놓으며 이어져왔다. 내 나이가 심슨 부부와 비슷해질 때까지 시리즈가 끝나지 않았...
겨울산, 심오한 푸르름제1092호 산은 사계절 중 언제가 제일 좋은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각각의 계절에 따라 그 맛과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기> 태사공자서(太史公自敍)에 “무릇 봄에 나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거둬들이고, 겨울에 갈무리하는 것이 천도의 큰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계는 스스로 돌고, 자연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