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은 망각하고 있었다제1094호 2015년의 한국문학을 회고할 때, 가장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까. 나는 ‘소설의 종말’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소설은 쓰이고 있으며, 읽히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독자들이 당대의 한국소설에 깊은 신뢰감을 갖고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의 감정을 ...
괜찮다, 괜찮다제1093호 확 마음이 엎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예상치 못한 때 온다. 요즈음 만인을 즐겁게 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었다. 몇 회였지… 어머님 상을 치른 덕선이 아빠가 택이에게 묻는다. “너는 언제 엄마가 보고 싶냐?” 택이는 대답한다. “매일 보고 싶어요….” ...
<진보 열전> 외 신간 안내제1093호 진보 열전 남재희 지음, 메디치 펴냄, 1만6천원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1950년대 이래 교유했던 ‘진보인사’ 14명에 대한 목격담을 풀어놓았다. “거물급은 아니지만 고생을 참 많이 하며 올곧게 꿋꿋이 산 사람들”이다. 진보당 강령에 사회민주주의 개념을 넣은 이동화 통일사회당수,...
엄마와 이별하는 법제1093호“엄마가 넘어져서 많이 다쳤다. 누워 있어.” 미국 뉴욕의 만화가 라즈 채스트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집 안에서 보스로 군림하고 있는 어머니. 그분만은 언제나 괜찮을 것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자 ‘소화전’같이 튼실한 체격의 어머니조차 주저앉게 하였다…
왕여드름의 어퍼컷제1093호 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생애 가장 싫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목욕과 병원에 가는 일이라고 하겠다. 목욕은 처음부터 싫었다. 털 안으로 축축하게 젖어오는 그 느낌이 불쾌하고 ‘쏴’ 하고 쏟아지는 물소리가 공포스럽다. 병원에 가는 일을 싫어하기 시작한 것은 두 살 무렵이었다. 몸이...
맨정신으론 왜 안 돼?제1093호 모임이나 술자리가 많은 연말이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술자리 예절’이랍시고 “어른에게 술을 받을 때나 따를 때는 두 손을 이용” “술을 못 마셔도 첫 잔은 예의상 받기” 등을 제시하고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술문화와 넘치는 꼰대력에 대한 반발이랄까. 나는...
객관성을 상실했다제1093호 “언니, 이 사진 객관적으로 예뻐, 안 예뻐?” 요즘 내가 언니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나는 어느 순간 객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내 눈을 믿지 않기로 했다. 내가 보기엔 눈·코·입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는 내 아이가 남들 눈에는 전혀 예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걸 깨닫...
30cm 간격, 몇 년에 걸쳐 나눈 이야기제1093호 대략 30cm였을 것이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그들 사이의 간격이. 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백현진은 주로 남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곤 했다. 1990년대에는 어어부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장영규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방준석의 차 조수석에 자주 ...
멋지다, 쌍문동 태티서!제1093호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엄마들의 목소리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프롤로그에서 주요 인물 소개가 끝나고 엄마들의 “밥 먹어라!”는 외침이 쌍문동 골목길을 가득 채우면 아이들이 집으로 달려가면서 본격적인 드라마가 펼쳐진다. 말하자면 이 드라...
내 배, 동성호제1093호내 기억 속 최초의 배는 외삼촌의 어선이었다. 통통배라고 불렀던, 이사이클 행정의 소구기관 배였다. 외삼촌은 그것으로 어장을 다녔는데 내가 맨 처음 그 배를 얻어 타고 따라간 게 일곱 살 때였다. 보통은 저녁에 그물을 내리고 다음날 새벽에 걷는 게 순서이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 청년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