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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는 너를 몰라도 된다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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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23 20:44 수정 : 2015-12-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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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지배한 책은 단연 <미움받을 용기>다. 지난 2~12월 41주 연속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만 80만 부 넘게 팔리면서 심리학 분야뿐 아니라 전체 책 판매 기록을 다시 썼다. 저자인 일본 심리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책은 그 뒤 한국에서 14권이나 번역됐고, 대부분이 인문학 분야에서 많이 팔린 책 50위권 안에 들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주기적으로 심리학 서적이 인문서 시장을 들썩였다. 2002년 출간된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21세기북스)이 80만 부 넘게 팔린 것이 시작이었다. 2005년 나온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 슬레이터, 에코의서재)는 ‘심리학’이라는 프레임을 거치면 인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편집자들에게는 판매 부수 못지않게 이 점이 중요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에 놀랐던 그때가 기억난다.

심리서를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질문을 안고 있기 때문에 크게 흥했던 책에선 그 답까지는 아니더라도 공통 감정 같은 것을 담고 있다. 두 책 합쳐 90만 권 넘게 팔린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와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는 본격적인 세대 심리학의 시작이었다. 돌아보니 그때는 모든 콘텐츠가 성장담으로 통했다. 불완전한 이야기, 후진 드라마, 심지어 막무가내식 대화법에도 ‘성장통’은 만능 땜질이었다. 마치 후배들에게 밀려서 졸업을 하고, 더 이상 받을 교육이 없는 세대가, 돌아갈 학교가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도 좋은 건지, 어떻게 나이 먹어야 할지 묻고 있는 형국이었다.

두 책의 저자 김혜남씨는 그 뒤를 이은 힐링 열풍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제가 요즘 유행하는 힐링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좀 고쳐놓고 싶어요. 힐링이 오히려 아픈 사람을 양산하고 있거든요. 일상생활은 우리가 하기 싫은 일투성이예요. 그걸 갈등으로 여기고 풀 생각을 안하고 병으로 만들면 개인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져요.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죠.”(<인물과 사상> 2015년 5월호 인터뷰)

<아들러 심리학>이나 <미움받을 용기>의 기시미 이치로가 강조하는 점은 과거를 고칠 수 없으므로 현재의 문제는 지금 내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공허한 위로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자신의 책임을 묻는 말이 속 시원했다. 게다가 ‘미움받을 용기’ ‘평범해질 용기’의 ‘용기’란 ‘포기’와도 같은 말이다. “원래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라. 그게 이해의 출발점이다.”(<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기시미 이치로, 살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적당한 체념, 이것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 올해 우리가 찾은 길이었다.

남은주 <한겨레>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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