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제1117호 이십 몇 년 전 엄마의 화장대 거울엔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모서리에 스카치테이프를 무척 조심스러운 모양으로 붙인 걸 보면 엄마는 그 사진을 아끼는 것 같았다. 나는 다섯 살이었고 화장대보다 키가 작았으며 사진 속 여자를 알지 못했다. 엄마는 닮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자주 바라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
가장 가련한 입의 노래제1117호 마약으로 무너져가던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는 할리우드가 제안한 자신의 전기영화에 출연하며 재기를 꿈꾼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마약 구입비를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괴한들에게 무차별적 폭행을 당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는데, 트럼펫 주자로서는 치명적이게도 앞니를 모두 잃는다. 영화는 중단되고 뮤지션…
인생은 나그네길제1117호“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아시다시피 (젊은 분들은 모르시려나) 1960년대 최희준 노래 <하숙생>의 가사이다. 이 노랫말이...
인공지능이 준다네 기본소득제1117호 “30년 안에 기계가 인간 직업의 50%를 대체할 것이다.” 모셰 바르디 미국 라이스대학 컴퓨터과학부 교수의 진단은 시나브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가디언> 애니메이션 ‘지구 최후의 직업’은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지리멸렬하고 고독한 존재로 머무...
약한 사마리아인제1117호 남을 돕지 못해 안달이라면 사회적으론 칭찬받겠지만 상담실에선 대체 왜 그러냐고 물을 것이다. 남을 돕지 않고 있을 땐 갈망이나 허기 같은 것을 느낀다면 더욱 그렇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뜻과 행동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때만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주식회사 대한민국> 외 신간 안내제1117호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4천원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글쓴이는 “많은 요인들이 한국 젊은이들을 투쟁이 아닌 절망으로 몰고 갔다”며 노무현·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주류 개혁주의 정당에 대한 실망, 대기업 중심 성장 신화에 대한 미련 ...
3개의 다리로 온전히 서는 의자제1117호미술관이 시끌시끌하다. “대략 3m 정도 크기의 스크린이 있고, 세 부분으로 나뉘어 영상이 나타나네요.” “첫 번째는 비가 오고 있는 모습, 두 번째는 사람들이 물로 뛰어드는 모습.” “뛰어든 물은 별로 깨끗하지 않네요.” 감상하는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고...
허클베리핀, 제주에 살다제1117호 “커다랗게 쪼개진 수많은 날 알게 되었어/ 푸른 바다 높은 탑/ 젖은 몸의 널 기다리는 기다리는/ 깊은 잠에 빠진 너/ 깨어나는 그때 달아나라” -밴드 ‘허클베리핀’의 디지털 싱글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 중에...
한국전쟁의 사각을 보다제1117호 사진은 응시(凝視)다. 응결된 시선. 이 말은 절반만 참이다. 모든 사진은 역사적이다. 단 한 장도 시공간에서 탈출할 수 없다. 역사적이므로, 모든 사진은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촬영했으며,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렸는지가, 부처의 등 뒤 광배처럼, 은밀하게 사진 뒤에 숨어 있다....
디자인을 산다 스타일을 마신다제1117호 ‘아이폰’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무수한 논문과 복잡한 분석들이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한 문장으로 축약해보면 결국 애플의 그 광고 슬로건이었다. ‘이런 아이폰이 있다는 건, 이런 아이폰이 있다는 것’. 애플은 과감하고 단호하게 아이폰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세상을 나눴다. 아이폰을 쓴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