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무사하니?제1120호 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계절이 바뀌며 창문을 활짝 열고 지내다보니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집 안에 고스란히 내려앉는다. 새소리, 물소리, 풀숲에서 ‘우다다’ 하는 아기 고양이 소리…라면 좋으련만 깡깡, 쇠를 두드리는 공사 소음이 올여름 유난하다. 아파트촌인 이 동네에 유일하다시피 남아 ...
빠지직 삐지직 가재 씹는 소리제1120호 말복 더위에 아들은 어두니골 범석이네 집 앞 웅덩잇가에서 가재국을 끓여 먹고 놀기로 합니다. 점심을 해먹을 수 있게 각자 재료 한 가지씩 가지고 모이기로 합니다. 뼛속까지 시원한 샘물이 쫄쫄 흐르는 어두니골 도랑을 뒤져 가재를 잡습니다. 가재는 물이 찌질찌질한 도랑가에 많이 삽니다. 돌을 살며시 들어 ...
율마의 삶 편백의 삶제1120호 장맛비는 사흘째 쉬지 않고 내리는데 처마 아래 우두커니 선 화분에는 비가 닿지 않는다. 화분에 심긴 율마 네 그루는 환장할 지경이다. ‘뭔 놈의 비가 이리 쏟냐’고 구시렁대며 처마 아래로 비를 피했을 때 마른 흙에 뿌리박고 비를 갈망하는 율마 네 그루가 눈에 들었다. 겨우 한 발짝 밖은 억수...
복기 말고 고백제1120호 부재중 전화가 휴대전화 화면에 떴다. 언제나 그렇듯 약속 없는 일요일, 뭐할까 뭐할까 하다가 수영장에 가서 1시간 수영하고 나와 확인한 것이다. 전화 건 사람은 사촌형이었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는 아니다. 무슨 일인지 도무지 짐작도 안 갔다.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이 대뜸 말했다. “소개팅...
정확한 위로제1120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탁월하게 그려낸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역 림보에서 단 하나의 행복한 기억을 갖고 떠나야 하는 망자들의 이야기 <원더풀 라이프>,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하던 아들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특별한 복수극을 꾸미는 <하나&g...
커다란 현수막 펼친 어머니제1120호 성소수자 가족분들을 모시고 강연한 적이 있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전하며 가족의 수용이 성소수자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자녀의 정체성이 불편하더라도 지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였다. 강연을 듣던 한 어머니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마무리할 즈음 그 어머니께 소감을 여쭤보았…
없어지기 전에 가보자 인디 공간제1120호 막내&#160; 국물이 맛있네. 조미료 넣었당가? 엄마&#160; 뭔 소리데? 안 넣었제. 막내&#160; 신기하네이. 엄마&#160; 맛없으믄 쪼까 쓰긴 해야. 2007년 11월9일, 막내아들...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외 신간 안내제1120호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강준만·강지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1만3천원 책의 첫 장에 쓰인 글귀가 인상적이다. ‘빠순이들이 누려 마땅한 인권의 회복을 위하여’. 강준만 교수와 그 딸의 첫 합작품이다. 대중문화를 굴러가게 하는 토양으로서 ‘팬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나...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가족은 잘 지내나요?>제1120호 “시장사회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랑해’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와 무작정 함께 있으려 하거나 꽃다발 같은 쓸데없는 것을 들고 그 사람을 찾아가는 일 같은 증상을 보이면 사랑에 빠졌다는 진단을 받는다. 사랑은 일상에 대해선 갑자기 무능해지고 자신의 감정을 증명하는 데는 턱없이 유능해지는 비효율적인 열정…
제국의 위협자들제1120호 식민지 조선의 최고 학부는 1929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경성제국대학이었다. 경성제대를 그저 서울대의 전신쯤으로 생각하면 오해가 생길지 모른다. 경성제대는 비록 서울에 있었지만 일본의 여섯 번째 제국대학으로 철저하게 일본인이 주체가 되어 운영됐다. 조선인 학생은 기껏해야 정원의 3분의 1 정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