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 왈칵하는 골목길 인생제1122호나의 어머니는 시골 동네에서 가장 잘사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가장 가난한 동네 청년을 뜨겁게 사랑했고, 4남매를 주렁주렁 매달게 됐다. 어머니는 백화점 화장실 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큰아들(나의 큰형)이 군대 휴가를 나온 첫날, 청소복 입은 자신을 백화점에서 안아줬다는 얘기를 할 때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물...
발굴하듯 읽는 ‘문명의 통로’제1122호고구려 유민 고선지가 이끄는 당군과 지야드 이븐 살리흐의 아랍군은 751년 7월 탈라스 하반의 아틀라후에서 전투를 벌였다. 닷새 동안 대치하던 중 당군의 일부였던 카를룩 유목민들이 배반해 아랍 쪽으로 넘어갔다. 당군은 좌우로 협공당해 참패했다. 고선지는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패배에 책임을 지고 절도사직에서 …
“보호받고 싶지 않다”제1122호그렇다. 이것은 ‘애도’의 기록이자 ‘싸움’의 기록이다. 2016년 5월17일. 23살 여성이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그 남성은 6명의 남성을 보낸 뒤 그녀를 찔렀다. 남성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많은 여성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에 ...
‘유감’과 ‘통감’은 사과가 아니다제1122호“제가 어떤 사람이든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당혹감을 안겨주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잘못된 복장 선택이었습니다. 사과합니다.” 영국의 해리 왕자는 2005년 한 가장무도회에서 나치 제복을 입었다가 사과했다. 이건 사과일까. <공개 사과의 기술>을 쓴 미국 서던오리건대학의 에드윈 L. ...
형제전쟁의 불안을 기억하며제1122호2016년 여름, 한반도가 뜨겁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계획 탓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안보’를 내세워 사드 배치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경북 성주를 포함해 남쪽에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
매끄러운 세상을 부숴라제1122호표지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유명한 미국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풍선 개’다. 이 작품은 2013년 11월 크리스티 옥션에서 5840만달러에 팔렸다. 한국돈으로 600억원이 넘는다. 생존 작가의 미술품 중 최고 경매액이었다. 페이스북 ‘좋아요’의 실체 자본주의와 성과사회...
잘 알지도 못하면서제1122호 온 동네 다, 소문냈는데 아직 모르는 이가 있을까봐 한 자 적자면 “쉬고 있습니다, 쭉~”. 휴가다. 20년 넘게 인권운동하며 몇 달 쉬거나 여행 다니기도 했지만 365일이라는 알짜배기 하루하루를 선물받은 건 처음이다. 쉬기로 결심한 즈음에 심하게 휘둘리고 있었다. 인권이란 것이 ‘누구나 누려야 할 ...
정태춘이 바꾼 것제1122호 ‘번민’이란 낱말이 이상한가? 불온한가? 반체제적인가?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지만, 낱말 하나하나에 벌벌 떨던 시절이 있었다. 벌벌 떨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위정자들은 ‘탈춤’에도, ‘고독’에도, ‘방황’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번민은 사색으로 바뀌어야 했고, ‘탈춤의...
아이들의 ‘온전한’ 세계제1122호 부유하지는 않지만 화목하게 엄마, 아빠, 그리고 철부지 남동생과 함께 사는 선(최수인)은 집에서는 어른스럽고 다정다감한 딸이자 누나다. 하지만 학교에서 선은 왕따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은 선을 따돌리고, 선의 시선은 언제나 애처롭게 그들을 향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선 앞에 전학생 지아(...
‘하지 않음’의 정치학제1122호 갑작스럽지만 이 글은 마지막 연재다. 따라서 비연애 칼럼의 엑기스를 정리하며 코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코너의 제목인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내가 3년째 발간하는 독립잡지 <계간홀로>의 부제이자 저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21세기북스·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