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떤 사람이든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당혹감을 안겨주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잘못된 복장 선택이었습니다. 사과합니다.”
영국의 해리 왕자는 2005년 한 가장무도회에서 나치 제복을 입었다가 사과했다. 이건 사과일까. <공개 사과의 기술>을 쓴 미국 서던오리건대학의 에드윈 L. 바티스텔라 교수는 이 책에서 불충분한 사과라고 말한다. ‘죄송하고 사과한다’고 했지만 ‘당혹감을 안겨주었다면’이란 전제가 달려 있다. “현명하지 못한 복장 선택이란 추상성에 사과할 뿐 나치 제복에 암시된 모욕적 행태나 가치 훼손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사과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좋은 사과의 다양한 사례
크든 작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저자는 그 상황을 극복하는 기회를 줄 ‘괜찮은 사과’의 조건을 제시한다. 특정한 규칙 위반을 인정하고 비판을 수용할 것. 잘못된 행위를 인정하고 그 행위와 연관됐던 당시의 자신을 비판할 것.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할 것. 속죄와 배상을 제시할 것.
저자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이 어떤 해악을 가져왔는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죄(잘못)는 거론하지 않은 채 죄스러움만을 사과”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감정의 충돌이 싫어서 “내가 잘못했어”라고 무턱대고 얘기했다가 상황 정리는커녕 “뭘 잘못했는데?”란 되물음을 당했다면 앞의 요소들이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과가 ‘사과 요구-사과-응답’의 3단계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응답은 피해자의 영역이다. “가해자가 엉뚱한 사안에 대해 사과하거나, 사과가 불완전하고 모호”하면, 피해자는 응답을 거부한다. 바티스텔라 교수는 “유감이다”라는 표현도 가해자의 감정 상태에 집중한 것이지 사과의 적극성이 떨어진 말이라고 본다.
이 책은 개인이든 국가든 사과할 일이 많아진 사회에서 효과적인 공개 사과의 기술이 무엇인지 안내한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사과, 맥도널드사 등 기업의 사과, 배우와 스포츠인의 사과 등 다양한 사례를 들며 설명한다. 저자는 국가 차원의 가장 좋은 사과를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미국 내 일본인 강제 억류 조처에 대한 미국의 뒤늦은 사과 결정(1988년)과 16억달러 이상의 배상금 지급을 꼽았다. 5명의 미국 역대 대통령이 돌아가며 이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이 책의 사과 기술이 우리 현실에서 잘 적용되고 있을까.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사과란 말 대신 ‘유감’ ‘통감’이란 말을 흔히 쓴다. 지난해 12월28일 한국과 일본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합의를 두고, 피해자인 생존 할머니들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한다. 사과의 3단계 가운데 ‘응답’이 거부됐으니 이 문제는 다시 ‘사과 요구’의 1단계로 되돌아갔다. 사망자가 속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가 전임 정부부터 불거졌으니 현 정부의 책임성은 면책된 걸까.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을 의무” 저자는 ‘제7장 국가 차원의 사과’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계승자(현 정부)들은 전임자들이 저지른 불의에 대해 사과할 책임이 있는가? (중략) 우리는 책임과 죄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국가 지도자는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중략) 국가적 사과는 화해의 시작이나 마무리 단계가 될 수 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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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사과의 기술> 에드윈 L. 바티스텔라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1만5천원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을 의무” 저자는 ‘제7장 국가 차원의 사과’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계승자(현 정부)들은 전임자들이 저지른 불의에 대해 사과할 책임이 있는가? (중략) 우리는 책임과 죄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국가 지도자는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중략) 국가적 사과는 화해의 시작이나 마무리 단계가 될 수 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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