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영호 제공
“커다랗게 쪼개진 수많은 날 알게 되었어/ 푸른 바다 높은 탑/ 젖은 몸의 널 기다리는 기다리는/ 깊은 잠에 빠진 너/ 깨어나는 그때 달아나라”
-밴드 ‘허클베리핀’의 디지털 싱글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 중에서
한 걸음만 뛰면 제주 김녕 바다가 닿는 곳. 위로 하늘이 내려앉고, 아래로 짙은 바다 안개가 올라왔다. 키가 낮아진 하늘이 수평선과 맞닿자,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고깃배는 바다를 넘어 하늘로 올라갔다. 제주 김녕마을은 어른들이 “기후가 척박해 농사짓기 어려운데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딸을 시집보내기 꺼렸다”는 곳이다. 그래도 이기용은 이곳을 “풍경과 바람, 향기, 하늘, 길이 모두 도시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하늘이 70을 차지하고, 바다와 땅이 30인 풍경이 일상인 환상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바람·하늘을 찾아 서울을 떠나다
꼭 2년 전, 이기용은 제주 김녕에 정착했다. 그는 모던록 밴드 ‘허클베리핀’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다. 허클베리핀은 국내 최고 수준의 밴드로 꼽힌다. 1집 <18일의 수요일>과 3집 <올랭피오의 별>이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포함됐고, 그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상, 이듬해 최우수 모던록 앨범부문상을 받았다. 이기용을 따라 그의 음악 동료들이 제주로 내려왔다. 지난 6월8일 이기용, 그의 동료 정나리(키보드)와 마주한 김녕 바닷가의 횟집에 ‘한라산 소주’와 자리물회 안주가 곁들여졌다. 이야기 보따리가 열렸다.
서울에서의 삶은 팍팍했다. 이기용은 “서울에 있을 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감정이 극한까지 치달았고, 그게 폭발해서 나를 파괴하고, 내 안의 감정이 스스로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고 했다. 당시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던 그의 작업공간 ‘샤’가 임대료 압박 등의 이유로 연남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클베리핀 신곡 발표 준비와 62주 연속 공연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걸 ‘62주 자학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2014년 6월 결국 제주행을 택했다. 이기용은 “앞서 제주에 왔다가 완전히 매료돼서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뒷일은 나중에 걱정하기로 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20년 뒤 헤어질 걱정을 하면서 사랑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서울에서 제주로 떠나던 날은 특별했다. “가족을 서울에 남기고, 새벽부터 차를 제주행 배에 싣기 위해 목포로 가는 고속도로였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음악을 들으며 차 안에서 느꼈던 공기와 냄새가 지금도 기억날 만큼 선명하고 특별한 하루였다.” 잠시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버리지 않으면 떠날 수 없었다. 서울 작업실 임대료를 뺐다. 그 돈으로 김녕에 3층짜리 펜션을 임대했다. 근거지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비용 마련을 위해서였다. 차 한 대 안에 짐을 모두 정리했다. 굳이 ‘서울의 삶’을 실어올 까닭도 없었다. 작업실 창고에 쌓아뒀던 수백만원어치 되는 ‘북클립’(음반 CD용 인쇄물)도 버렸다. 오히려 중요하게 챙긴 것은 몇 푼 안 되는 ‘냄비’ 같은 것들이었다. ‘북클립 대신 택한 냄비’가 제주에서 삶의 방식을 예고했다. “‘CD의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으로 북클립을 재활용쓰레기통에 넣고 생존을 위해 냄비를 챙긴 것이다. (웃음) 막상 내가 가진 게 악기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제주행이 가능했던 것 같다. 덕분에 삶과 음악이 달라졌다.”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기용은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컨테이너에서 1년 넘게 살았다. 비가 오면 컨테이너 안으로 빗물이 주르륵 흐르고, 바람이 거세게 불면 컨테이너와 함께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허름하고 불안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통장 잔고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 이기용의 뒤를 영화감독 최창환이 따라왔다. “예술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아보자”는 이기용의 꾐에 빠졌다. 단편영화 <호명인생>(2008) 등을 제작했던 그는 허클베리핀 1집 제작 때 뮤직비디오를 찍어주는 등 이기용과 19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최 감독은 “난 가진 게 (영화 편집이 가능한) 노트북밖에 없어서 제주로 내려올 수 있었다”며 웃었다. 여럿이 살려면 이런 ‘멀티플레이어’가 한 명쯤 필요한 법이다. 그는 ‘스왈로우’에서 음향과 조명 엔지니어 구실을 해주고 있다. 스왈로우가 운영하는 식당 ‘샤키친’을 ‘막설계’로 짓고 셰프 구실까지 한다. 최 감독은 “도시에서의 삶을 버리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여름 한 달 정도 고민했다. 영화감독으로서 창작을 계속하기 위해 삶을 바꾸고 싶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 첼로 선율에서 바다를 느끼다
밴드 ‘스왈로우’ 멤버 정나리(키보드), 이소영(보컬), 이기용(기타), 하이람 피스키텔(첼 ·왼쪽 터)이 6월8일 제주 김녕 ‘샤스페이스’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영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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