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복수형 ‘타이거’제1116호 사회적 유품은 ‘일인칭 복수형’으로 말을 한다. 김숨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 [L의 운동화](민음사 펴냄)의 실질적 화자 ‘L의 운동화’도 그렇다. 이 운동화는 1987년 6월9일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던 그날 신고 있던 신발이다. 미술작품 복원가인 ‘나’는 L의 운동화를 복원 대상으로 ...
사초를 탐한 조선의 왕들제1116호 조선왕조는 역사 기록을 많이 남겼다. 조선 초기부터 임금이 죽으면 ‘실록청’이라는 임시 편찬기구를 만든 뒤, 재위 기간에 만들어진 여러 사초를 모아서 방대한 분량의 <실록>을 편찬했다. 승정원에서는 임금께 올리거나, 임금이 내린 문서들, 임금과 관원들이 나눈 공식적인 대화를 모아 &...
고양이와 떠나는 우주여행제1116호 약 137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났다. 우주의 탄생이다. 빅뱅에 관해 밝혀진 사실은 아직 많지 않지만, 이 대사건으로 시간과 공간이 발생했고, 이제까지 알려진 ‘자연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수많은 과학자들은 확신한다. 이 ‘자연법칙’은 곧이어 우주를 팽창시키고, 별을 만들고, 생명체를 태어나게 했다. 물론...
강남,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제1116호 한국 사회에서 ‘서울 강남’은 예외적 공간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에서 강남을 “구별짓기의 아성” “욕망의 용광로”라고 표현한 바 있다. 또한 강남 지역 가운데도 격차가 있어 ‘강남 안의 강북’이 공존하는 형용모순의 공간이다. 남북 분단의 ...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 외 신간 안내제1115호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 이봉섭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1만9500원 400여 년 전, 수레에 날개를 붙여 하늘을 날았던 정평구라는 이가 있다. 조선 군인이던 그는 임진왜란 때, ‘비거’(하늘을 나는 수레라는 뜻)로 함락 직전의 성에 날아 들어가 벗을 구해 나온다. 조선...
자기증오 희생자의 끝없는 갈증제1115호 <절망이 아닌 선택>(디오도어 루빈 지음, 나무생각 펴냄)엔 휴가 때가 되면 꼭 병이 나거나, 싫은 친구들과 같이 가거나, 발목을 삐거나, 하다못해 기후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가서 휴가를 망치는 여자 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분석 과정에서 이 환자는 자신이 지칠 줄 모르고 ...
빠삐용 가득 낚았네제1115호‘마이구리’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의 뜻이 무언지 전혀 감이 안 올 것이다. 혹시 구리 종류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내가 뭐한다고 산다이에서 광물에 대해 이야기하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장난기 있는 분들은 ‘어쭈구리’나 좀 심하게 ‘씹쭈구리’ 같은 비속어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물고...
엔진오일 갈고 때 뺀 ‘붕이’가 부우웅제1115호 내 이름은 붕이, 자동차다. 나는 원래 이름 없는 존재였다. ‘아삼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이름을 붙여주는 이도 있었지만 내 주인은 이름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붕이’가 된 건 그가 연애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여자친구한테만 애칭을 만들어주면 됐지, 나한테까지 세트로 붙여줄 건 뭔가...
불안하다고 불안해하지 마제1115호 많은 엄마들이 ‘조리원 동기’를 갖고 있다. 같은 시기에 아기를 낳아 발달 상황을 공유하기 쉽고 육아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조리원 동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내 앞에 놓인 선택지가 너무 많을 때 특히 그렇다. 혼자 수십 가지의 분유 앞에...
‘숨 참기’ 연습하며 바다로 순간이동제1115호 “산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신체 기관이 어디일 것 같아요?” 프리다이빙 수업, 숨을 참으려는 몇몇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다. 숨을 오래 참기 위한 수업을 돈 내고 듣게 될 줄이야. 한 번의 호흡만으로 물속을 유영하는 단순한 ‘자유로움’ 속에는 호흡을 참아야만 하는 ‘억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