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슬픈 유전자제1218호 “그거 알아? 언니 성격이 지금은 완전 ‘용’됐지만, 옛날에 언니는 좀 재수가 없었어. 맨날 우리한테 ‘조용히 해달라’ 그러고. 혼자 공부만 하고,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고. 완전 짜증 나는 언니였어. 온몸이 가시로 덮인 사람 같았다니까. 맨날 날카롭고 예민해가지고.” 나보고 ‘나이 들더니, ...
‘헬조선’에서 로맨스를 꿈꿀 수 있을까제1218호 <너도 인간이니?>는 로봇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제목은 본래 인간답지 못한 이를 경멸하는 뜻을 담지만,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을 담은 뜻으로도 읽힌다. 그동안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많았지만, 드라마는 드물었다. 하지만 2016년 ‘알파고’의 ...
소수자의 목소리 밝고 당당하게제1218호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김소연 시인의 ‘그래서’) 이슬람 사원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골목, 서울 이태원 우사단길. 하얀 바탕에 적힌 시구가 가는 이들의 눈길을 잡는다. 그 아래에 있는 간판이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려준다. ‘햇빛서점’.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끊긴 철교가 만든 피란민 이중 서사제1217호 ‘대동강철교의 피란민’이란 사진이 있다. 미국 시사지 <라이프>의 사진기자 막스 데스퍼가 찍었다. 그는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기와 미주리호 함상에서 일본의 항복 서명 장면을 찍은 전쟁사진가다. 한국에는 1950년 7월17일 들어와 많은 사진을 찍었고, 대동강철...
<분노의 시대>외 신간 안내제1217호분노의 시대 판카지 미슈라 지음, 강주헌 옮김, 열린책들 펴냄, 2만2천원 현대사회에 만연한 분노의 기원을 분석한 책. 지은이는 전세계에서 테러와 폭력이 벌어지는 원인이 ‘문명사’에 있다고 본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근대 서구 문명의 핵심에서 소외된 이들이 품어온 유구한 분노의 결과물이라는 ...
나에겐 못생길 권리가 있다 제1217호페미니즘 바람이 불면서 여성 인권 논의가 뜨겁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해온 일들은 사실 수천 년 동안 켜켜이 쌓여온 결과물이다. <헨젤과 그레텔> <백설 공주> 등의 동화만 보아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공주, 늙고 추한 여성은 마녀로 그려진다. 여성...
도시 속 ‘혼자’들의 삶을 위해제1217호 서울에서 혼자 사는 20대 여성 ‘이시다’의 삶을 그린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창비 펴냄, 이하 <혼기법>이 완간됐다. <혼기법>은 2015년 12월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화제의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왜 종이에 쓰는가?제1217호 2016년 7월18일 월요일 전기가 끊겼다. 0,1,0,1… 신호로 기록된 모든 저장장치가 먹통이 됐다. 사람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디지털 기록은 시간을 켜켜이 새겨두는 인류의 나이테 같은 것이었다. 디지털 치매를 앓던 이들은 그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모든 삶이...
홈트, 망하지 않아!제1217호 지난주 ‘전정윤의 작심 4주’ 첫 회를 시작한 뒤 거실에 들어서면 싸한 느낌을 받곤 했다. 거실 구석에 처박아둔 요가 매트가 ‘지가 편집장이라도 되는 양’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기사로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운동하기 싫은’ 귀차니즘이 내면에서 대충돌을 일으키면서 급기야 요가 매트를 편집장화...
상처는 나의 힘제1217호 4월 초인데 진눈깨비가 내렸다. 난데없는 눈발에 벚꽃도 파리했다. 퇴사하고 며칠 뒤 엄마와 간 제주도 여행에서 덜덜 떨었다. 그래도 벚꽃 앞에서 사진은 한 장씩 찍었는데 표정이 노역에라도 끌려온 것 같다. 당시 엄마는 내가 백수가 된 줄 몰랐다. 나는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느라 줄어든 통장 잔고 탓에 더 추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