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강준(오른쪽)은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에서 인간과 로봇으로 1인 2역을 했다. KBS 제공
‘백래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 반면 여주인공을 둘러싼 비난은 거세다. 첫 회부터 재벌 3세인 인간 남신이 강소봉을 폭행하는 장면으로 물의를 빚었다. 특히 실감나는 연출을 위해 공승연을 실제 때리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제작진의 둔감함이 경악을 부른 것이다. 물론 폭행은 인간 남신이 사회적 비난을 자초하려 일부러 꾸민 일이었고, 강소봉도 남신을 불법촬영해 팔았다는 죄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은 또 다른 문제를 내포한다. 여성을 불법촬영의 가해자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강소봉은 여기자와 짜고 남신을 찍어 파일을 유출했을 뿐 아니라, 발각된 뒤에도 다시 남신의 방에 카메라를 설치해 동영상을 찍는다. 수십 년간 불법촬영은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벌인 범죄였으나, 경찰·검찰·법원·언론 등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못했다. 하지만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경찰은 신속하게 범인을 체포했고, 언론들은 범죄의 심각성과 2차 피해의 우려를 엄중히 다뤘다. 오랫동안 여성 피해자들의 호소에 꿈쩍하지 않던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본 여성들은 분노했고, 4만5천 명이 거리시위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촬영에 대한 일반적인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뒤집어 보여주는 드라마라니, ‘백래시’(반격)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주인공이 얻어맞고, 남주인공을 불법사찰하고, 그러다가 같은 편에 서게 된다는 흐름은 <나의 아저씨>와 유사점을 지닌다. 하지만 강소봉은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아이유)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다. 돈이 절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직업윤리마저 팽개치고, 남신3이 목숨을 구해주었음에도 돈과 호기심에 끌려 배덕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윤리감각을 상실한 강소봉은 이지안보다 영화 <돌연변이>의 주진(박보영)에 가깝다. 주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자신을 믿고 찾아온 박구(이광수)를 팔아넘긴다. 여성을 반드시 이타적 존재로 그릴 필요는 없지만, 내적 맥락도 이해되지 않는 파탄 난 인성으로 그리는 것은 ‘여성혐오’의 일종이다. 예컨대 ‘요즘 여자들 무섭다’는 남성들 사이의 푸념에 등장하는 여성의 재현인 것이다. 남신3을 만든 것이 오로라 박사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영화 <사이보그 그녀>, 드라마 <보그맘> <로봇이 아니야>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재현하기 위해 남자가 로봇을 만들었던 것과 달리, 여성 과학자를 등장시킨다는 점은 신선하다. 하지만 오로라 박사와 남신3의 관계를 생각하면 반여성적이다. 남신3은 오로라 박사의 “말 잘 듣는” 아들로 세상에 왔으며, 엄마의 사랑을 언제나 희구한다. 하지만 오로라 박사가 남신3에게 품는 모성은 무조건적 헌신이 아니다. 그는 “진짜 남신이 깨어나면 남신3은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킬 스위치’를 심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들을 만들고 키우고 죽일 수도 있는 모성은 숭고한 사랑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가장 지배적이며 프로젝트화한 모성의 은유다. 외계인이거나 신이어야 가능한 상상 요컨대 <너도 인간이니?>는 인간 남자보다 훨씬 멋진 로봇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드라마지만, 물밑으로는 ‘여자 패는 한남’과 ‘이기적인 쌍년’과 ‘강남 엄마’를 그림자로 품는다. 하기야 ‘여자 패는 한남’과 ‘이기적인 쌍년’과 ‘강남 엄마’가 서로를 물어뜯는 ‘헬조선’에서 어떻게 로맨스를 꿈꿀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남자가 재벌 3세라도 불가능한 노릇이며, <별에서 온 그대>의 외계인이거나 <도깨비>의 신이거나 <너도 인간이니?>의 로봇이라야 겨우 상상해볼 만한 ‘불가능한 미션’이다. ‘헬조선’의 청춘들이 묻는다. ‘우리가 인간인 채로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 <돌연변이>의 박구가 인간임을 포기하고 ‘헬조선’을 떠났던 결말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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