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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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이 그토록 아이를 원한 까닭은 재벌가의 며느리로 시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아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선의 배후에는 경선을 괴롭히는 더 큰 권력인 시부모가 있다. 재벌인 신태종(박근형)은 “내 재산을 물려받을 내 핏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결합됐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경선은 그런 손자를 ‘딜리버리’(분만, 배달)해줄 존재다. 경선은 대리모에게 이 작업을 하청한다. 아들을 낳으면 추가 사례금을 주겠다는 계약 규정도 가부장제의 요구를 투영한다. 경선이 시부모에게 인격이 아닌 자궁으로 취급받은 만큼, 경선도 윤지영을 매몰차게 자궁으로 취급했다. 아무렇지 않지만, 모두 불법 경선과 시부모는 장애아란 말에 바로 낙태를 결정한다. 대를 잇고 재산을 상속받을 아이로 장애아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가부장제가 겉으로 찬양해 마지않는 ‘무조건적 모성’과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착종된 사회에서 아이는 무조건적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필요와 가부장제의 요구를 충족할 존재다. 경선과 시부모의 태도는 뜨악해 보이지만, 실은 장애아 출산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주류적인 정서이다. 드라마는 아무렇지 않게 낙태를 보여주지만, 사실 모두 불법이다. 이는 현재 낙태에 관한 법의 구멍을 말해준다. 경선의 동서인 여민경은 배우로 막 뜨려는 순간 임신하자, 남편 동의 없이 낙태한다. 현행법상 낙태는 형법으로 금지되며, 모자보건법에 명시된 예외 상황에서만 24주 이내에 배우자 동의가 있어야 낙태가 허용된다. 낙태법 폐지를 둘러싸고 많은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24주 이내에는 사회경제적 이유 등에 의해서도 배우자 동의 없이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악역에 해당하는 여민경이 일을 핑계로 낙태하면서도 “누구 아이인지 모르겠다”는 혼잣말을 뇌까리게 하여, ‘문란한 여성’의 이미지를 심는다. 즉 낙태죄가 폐지되면, 성적 문란으로 낙태하는 여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법무부적 편견’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양수 검사로 진단된 장애아의 낙태도 불법이다. 모자보건법상 예외 규정에 장애아의 규정은 없다. 물론 드라마는 이것이 불법임을 산부인과 의사의 대사로 언급한다. 그러나 장애아 낙태를 당연시하는 경선과 시부모의 모습으로, 현행 낙태죄와 모자보건법 규정이 사문화됐음을 드러낸다. 실제로 산전 검사에서 정상이었으나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장애아인 줄 알았다면 낙태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의사를 고소한 판례도 많다. 장애아 낙태를 이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장애인 복지가 열악한 탓도 있지만, 현행법과 인구정책이 낙태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심어온 탓도 크다. 일본 형법에서 온 낙태죄가 1953년 제정된 형법에 그대로 유지된 것은 한국전쟁 후 인구 소모가 크고, 독립국의 주권을 유지하려면 4천만 명 이상의 인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구정책 때문이었다. 또한 낙태죄 예외 조항을 담은 모자보건법이 1973년 유신체제하 비상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통과된 것은 박정희 정권 당시 실시된 산아제한정책과 관련이 있다. 즉 낙태죄도 예외 규정도 모두 인구정책의 산물이었다. 더욱이 모자보건법상 예외조항의 첫 항이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인 것은 우생학적 목적을 지닌 입법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낙태죄에 어른거리는 우생학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외조항에 산전 검사로 진단된 장애아라는 규정이 없어도, 이는 입법 당시 산전 검사 기법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입법 취지상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잘못된 법 관념이 만연한 것이다. 이참에 형법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예외 규정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우생학적 인구정책의 하나로 낙태죄를 이중으로 활용하고, 여성들은 법과 의료의 사각지대에서 죄의식을 떠안는 차별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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