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날씨 [손바닥문학상]제1493호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서연은 고개를 들어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새파란 하늘은 VR 이미지였다. 천장 한가운데 떠 있는 각종 숫자가 시시각각 바뀌었다. 기록표에 온도와 습도, 공기질 수치를 옮겨 적은 서연은 미간을 구겼다. 어제 이 시각 온도보다 11도나 높았다. 이런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걸 ...
비가 그칠 때까지 [손바닥문학상]제1493호 한 달째 비가 내렸다.이슬비로 시작한 비는 가랑비가 되더니 닷새 전부터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굵어진 빗줄기는 낮이건 새벽이건 때때로 세찬 소나기로 돌변했다. 소나기가 내릴 때면 양철 지붕에서는 어릿광대가 나무로 만든 채로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극의 절정에서 양철북을 세차게 내리치는 채....
모다깃비 [손바닥문학상]제1493호 *모다깃비는 뭇매를 치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를 뜻한다. 1.상생의 손 위에 겨우 임시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때, 호미곶은 이미 대부분이 물에 잠긴 뒤였다. 발 디딘 조형물 밑으로 엄마와 걷던 둘레길이, 은지와 회를 먹던 화봉수산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걷다 정민이 합류하면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던 노상 ...
아름답고 힘차게 이야기판 휘젓고 다니기를!…손바닥문학상 수상작제1492호 제15회 손바닥문학상에는 글 120편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오늘의 날씨’였습니다. 2023년 12월3일 김탁환 소설가,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종심에 오른 13편을 읽고 당선작을 골랐습니다. 대상에 이담희 ‘모...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제1486호 서울 잠실에 거대한 탑 같은 건물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이 풍경은 현실과도 비슷해 보이지만, 건물 주변이 온통 물이라는 점이 낯설다. 건물 내부의 선착장에서 한 남자가 7살 딸 한별을 데리고 짐을 배에 싣는 중이다. 이 건물에서 나고 자란 별이가 바깥을 보고 싶어 한다며 아빠인 호주는 배를 몰고 건물...
곁에서 오래 머물며 불편을 견뎌낸 문장제1484호 곳과 곳의 사이를 보기 위해 오늘의 날씨가 탄생하는 곁으로 가서 쓰세요. 등장생물의 곁, 등장시간의 곁, 등장공간의 곁. 곁에서 오래 머물 때 비로소 생물과 생물, 때와 때, 곳과 곳의 사이가 보이는 법입니다. 그 사이가 만들어지고 선명하게 벌어졌다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과정이 담긴 글이라면 정확하면서도...
열다섯 번째 손바닥은 ‘오늘의 날씨’입니다제1483호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오늘 날씨는 어떻습니까. 기후가 변하고 날씨가 격변합니다. 여름만 되면 또 어떤 이들이 숨지고 다칠지 근심하는 게 일상입니다. 이상기후 사례를 열거하는 게 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기록이 쏟아집니다. 기후위기를 문학의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건 어쩌면, 선택이 아닌 이 시대 작…
짝수 인간 [손바닥문학상]제1444호 바보를 바보라고 부르지 않은 것, 그것이 홍대가 자란 시대의 문명이었다. 바보가 아닌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바보로 의심되는 이에게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홍대가 할로할로 위에 한 스쿠프 듬뿍 얹어 올린 우베아이스크림의 보랏빛이 충분히 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가격이 산페르난도의 노점에서 파는 것보다 ...
카스피주엽나무 [손바닥문학상]제1444호 응급실 당직의 연락을 받은 것은 밤 11시가 좀 넘어서였다. 6개월 된 영아가 갑자기 한쪽 팔과 다리를 늘어뜨리고 처진 모습을 보여 급하게 이송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3층 당직실에서 뛰어 내려갔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응급구조사가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보호자로 보이는 부부가 새파랗게...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 [손바닥문학상]제1444호 하여간 지구란 것은 버릇없기 짝이 없다. 나를 이렇게 고생이나 하게 만들고. 흠, 아닌가. 지구는 인격체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구는 불에 탄 개미 사체다. 지구는 바닥에 달라붙은 껌이다. 지구는 물에 씻은 솜사탕이다. 이거 꽤 말이 되는걸. 지구는 학사경고장이다. 오, 어감 좋고.나는 흥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