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살리는 살림집 지어요제915호 “한국의 건축가들은 주택 문제에 흥미를 상실했다.” 10여 년 전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이렇게 썼다.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아파트 건설사와 정부가 벌이는 게임 속에서 주택에 관심 없기는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휘황한 ...
내일은 없어, 무대에서 죽자제914호흰 스크린에 대사가 뜬다. 연출가가 소리친다. “자, 앞에 비친 대사를 분석하세요.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예요. 어머니는 매춘부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삐끼입니다. 비린내 나는 가난,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예요. 사인을 주면 연기를 시작합니다. 원, 투, 스리, 포!” 감정 못 추스리고 주저앉아...
‘갑’을 벗어난 ‘을’들만의 공간제913호 <작업실 탐닉>(씨네21북스·2010)을 펴낸 일본의 작가 세노 갓파는 타인의 공간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면 분명 그 너머에 보이는 게 있을 거예요. …무언가 ‘지금 이 순간’이 보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예컨대 이런...
세상 따라 돌돌 말아 김밥제912호 지난주 한 누리꾼이 올린 김밥 사진에 잠시 포털 게시판이 떠들썩했다.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서 팔고 있다는 한 줄에 1만3800원짜리 유기농 김밥 이야기다. 물가를 알려주는 외국의 ‘햄버거 지수’처럼 김밥의 몸값이 그게 그거, 엇비슷한 줄로만 알았는데 천양지차다. 검은 김에 싸인 노동자의 ...
‘마음대로’ 결혼식과 ‘즐거운’ 장례식제910호당신의 결혼식, 당신의 장례식. 생이 명멸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당신을 알아보기 어렵다. 나 지금 웃고 있니? 내 표정만큼이나 당신의 표정도 읽히지 않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규격화된 소비 방식을 택한 우리가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인가. 그러나 자기 삶의 중요한 절차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
내 남자의 로맨스?제908호 쉿, 이건 비밀인데, 회사 옆자리에 앉은 이아무개씨에게서 요즘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다. 결혼 15년차를 넘긴 그는 술자리가 깊어질라치면 “연애하고 싶다”고 하소연을 한다. 자타 공인 일중독자면서 능력 있는 사원으로 인정받는 그다. 아내와는 아무 문제가 없다. 동지처럼, 친구처럼 격의 ...
디자인 독립 만세제907호 회사원 김창희(46)씨는 얼마 전 고민에 빠졌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회사 근처 옷가게에서 마음에 쏙 드는 슈트 한 벌을 발견했는데 난생처음 보는 브랜드였다. 외국 옷처럼 날렵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게감도 있다. 옷값은 60만원. ‘보세’라고 불리는 동대문 ...
낸시랭, 된장녀들의 잔 다르크?제906호 그것은 토론이 아니라 퍼포먼스였다. 새빨간 립스틱에 더 진한 매니큐어, 화려한 목걸이를 걸친 공연예술가 낸시랭이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씨와 마주 앉자마자 물었다. “누구세요? 혹시 연예인?” “저는 각종 기사 언론 보도를 비평하는….” “(짝짝짝) 너무 훌륭하세요. 전 뭐하시는 분인가 했어요. PD님도 ...
야매라도 괜찮아제905호 너는 거부할 수 없다, 이 주문. 소금은 ‘소금소금’, 후추는 ‘후추후추’, 파슬리는 ‘파슬파슬’ 뿌려댄다. 닭가슴살 대신 ‘닭찌찌’ 두 덩이를 프라이팬에 투척. 빠져든다, 너는, 이 요리에. “그러니까 퍼머겅. 두 번 퍼머겅.” 지난해 9월 말 한 포털 사이트에 이상한 요리 블로그가...
20대의 사교장, 언니들은 가라~제904호“신분증 주세요.”“아, 신분증요? 안 가져왔는데요.”“저희는 신분증 없으면 안 됩니다.” 지난 3월20일 저녁 7시30분. 서울 강남역 앞 ㅂ주점에서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곳은 1993년생부터 1984년생까지, 즉 20살부터 29살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 한국 나이로 30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