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공동작업실 ‘레인보우큐브’. 커튼으로 벽을 세워 공간을 나눴다. 큰 캔버스를 쓰거나 설치미술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 작가가 그 안에서 또 공간을 나눠쓰기도 한다.
미술 관련 도구 판매업을 하는 김 대표는 미술 전공자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레 공동작업실을 얻었다. 레인보우큐브는 2011년 8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사무실로 나온 오래된 건물 2층에 둥지를 틀었다. 작가들은 보증금 23만원에 월세 23만원을 내고 작업 공간을 가진다. 이들은 옥탑방까지 포함해 약 60평의 공간을 나눠쓴다. 김씨는 작가들이 내는 월세를 모아 전체 세와 공과금을 내고 비품을 마련한다. 운영을 한다지만 이 일로 딱히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책상 놓을 조그만 공간을 얻었을 뿐이다. 레인보우큐브를 비롯해 망원동 일대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이다. 공동작업실은 사회라는 정글에 갓 진출한 예술가들을 품는 공간이다. 레인보우큐브 원년 멤버라는 전영진(29) 작가는 “경제적인 이유가 공동작업실을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술을 하는 경우 학교에서 작업실을 사용했던 것이 익숙하다. 공동작업실은 그 형태가 학교 밖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작업 공간은 천을 이어붙여 만든 커튼으로 자기와 타인 사이를 구분짓고 있었다. 얇은 천의 벽은 그다지 공고하지 않았다. 그 사이로 옆사람이 듣는 음악과 무의식 중에 흘리는 콧노래도 비어져나온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는, 함께 있다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방해받는 것만 의미하진 않는다. 전영진 작가는 공동작업실의 장점으로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보고 자극받거나 배우는 점이 많다. 공모전, 행사 정보 등을 교환하기도 하고 일에 도움을 주고받을 사람을 만날 기회도 생긴다”고 한다. 혼자만의 작업을 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공간에서 작가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가치를 교환하고 있었다. 시대가 양산한 프리랜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도 집중할 공간은 필요하다. ‘갑’의 사무실보다 마음 편히, 카페보다 안정적으로 노트북 두드리며 일할 공간은 없을까. 서울 홍익대 인근 작업실 ‘물고기’와 ‘미로’는 다양한 꿈을 꾸는 이들로 조밀한 공간이다. 작업실을 운영하는 임혜영씨는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작가 일을 한 지 13년째다. 오래 영화판에 몸담았지만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임씨는 “굶지 않고 작업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공동작업실을 마련했다”고 밝힌다. 순수미술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동화작가, 시나리오작가, 소설가, 다큐 감독, 사진작가 등이 공간을 나눠쓴다. 임씨는 “작가들이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서로 소통하는 공간을 원한다”고 한다. 작가들은 이곳에서 서로 채찍질하고, 칭찬하고, ‘갑’의 전횡에 고단한 친구를 위로해줄 동료를 얻는다. 한발 더 나아가 임씨는 작가들에게 작업한 작품을 벽에 걸어놓기를 적극 권장한다. 다른 영역의 창작물을 보며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 귀족 부인들이 자기 집 거실에서 작품을 낭독하고 서로 비평할 수 있는 자리를 열어줬다면, 21세기 예술가들은 스스로 그런 장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오류, 간섭, 잡음 등을 벗 삼아 개인적인 공간을 쓰며 뜻밖의 동료를 얻은 이도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앨범 작업을 맡아온 디자이너 김기조(28)씨는 2011년 서울 쌍문동에 ‘기조측면’이라는 이름의 원맨 스튜디오를 열었다. 말이 좋아 원맨 스튜디오지 거창한 공간은 아니다. 30년 된 건물 1층, 한 10년쯤 전에는 구멍가게였을 법한 방 하나 딸린 상점 자리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 공과금은 무료다. 바로 옆에서 부동산을 하는 마음 좋은 주인 할머니가 젊은이 혼자 전기며 수도를 얼마나 쓰겠느냐며 그냥 지내라고 했단다. 혼자 있는 공간, 지켜보는 이 없으니 나태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김씨는 이내 새로운 자극을 찾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오래된 동네, 길가를 마주한 문틈으로 공사 소음, 지나가는 사람들의 잡담, 싸움 소리가 작업실에 고스란히 수용된다. 여름에 문을 열어놓으면 “여기 뭐하는 곳이오?” 하고 들여다보는 이도 적지 않다. 처음엔 작업에 방해가 됐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오류, 간섭, 잡음 등을 동료 삼으니 작업하는 데도 오히려 너그러워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이 자리잡은 공간에 대해 “외부 자극과 차단돼 특유의 결벽성을 보이는 일반적인 디자인 스튜디오와 이곳은 다르다. 낡고 오래되고 나이 들어 보이는 동네인데, 생각보다 액티브하다. 예컨대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뭔가 끊임없이 교환이 이뤄지는 거리다”라고 했다. 기조측면의 인테리어는 8할을 거리에 기댔다. 대부분 어디서 주워온 것이거나 중고 물품이다. 공간의 주인은 대충 오래된 것처럼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성실히 낡아가는 물건들에 매력을 느낀단다. 주워온 가구, 오래된 동네에 자리잡은 작업실, 컴퓨터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손맛을 강조하는 디자이너는 하나의 맥락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공동작업실을 사용하는 전영진씨와 개인 작업실을 쓰는 김기조씨가 입을 모아 말한 것은, 작업에 집중하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작업실에서 생활감을 지우는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전문적으로 자기 영역에 몰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따로 작업실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집과 작업실>(오브제·2012)을 펴낸 영국의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클리프턴 모그는 작업실을 이렇게 정의했다. “방 주인의 취향과 활동을 알 수 있는 공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으로 가득한 자기만의 공간, 차분하면서도 창의적인 안식처인 동시에 피난처.” 말인즉 작업실 마련은 집에서도 가능하다는 것.
정길영씨가 거실에서 옷과 패턴을 만드는 공간. 용도만 명확히 설정한다면 거실 한쪽이라도 ‘창의적 안식처’인 작업실을 만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