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그것은 소유의 재발견제954호어쨌거나 한 계절이 우물쭈물 물러나는 중이다. 새봄을 맞아 묵은 짐을 정리하길 결심한 지 아마도 여러 날, 드디어 칼을 뽑아들고 정리에 나섰는데 눈앞이 깜깜하다. 무엇부터 버려야 하지? 정리를 하기에 앞서 자꾸만 머뭇거리는 이유는 버리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테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들, 이를테면 추억이라든…
평론가들의, 평론가들에 대한 당신을 위한 뒷담화제953호 시작은 지난해 3월 개봉한 <건축학개론>이었을 것이다. 2012년 관객 100만 명을 넘긴 영화가 31편. 을 포함해 1년 새 1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가 3편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신 르네상스 시대’라는 나팔소리와 영화잡지 <무비위크>의 폐간 소식이 ...
제주가 낳은 강력한 판타지제952호이것은 제주가 낳은 강력한 판타지다. 3만 명의 죽음, 그들의 원혼을 등에 업고 신기가 넘치는 영화다. 존재하지 않는 곳을 만들어냄으로써 피투성이 역사에서 반쯤 고개를 돌린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는 다르다. <지슬>은 65년 전의 가장 비극적인 공간으로 관객...
돌아와요 부산항에 커피 마시러제951호180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시인 페테르 알텐베르크는 빈의 카페를 예찬하며 이런 시를 남겼다. “걱정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카페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애인이 약속을 어겼다면 카페로! 신발이 닳고 닳은 자, 카페로! 월급은 400크라운인데 지출이 500크라운이라면 카페로! ...
모두가 옳았다 결말은 파국이다제950호 “인간의 희로애락 중에서 분노가 제일 형님이야. 사람이 분노만 잘 다스리면 마음을 잡는 거야.” 지난 2월21일 개봉한 <분노의 윤리학>은 한 포주의 입을 빌려 이렇게 충고한다. 그러나 분노하지 않기가 어렵다. 한 여대생이 죽자 살인자, 도청자, 간음자, 갈취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애완 ...
마흔에 걷기를 배우다제949호호모에렉투스의 후손들은 요즘 걷기를 배운다. 한 걷기협회가 추산해보니 그동안 전국에서 과정을 마친 걷기 지도자만 2만 명이 넘는다. 오래전 엄마 손을 뿌리치고 혼자서 두 다리의 무게중심을 바꿔가며 앞으로 나가는 법을 배웠던 어른들이 새삼 등을 펴고, 다리를 뻗는 법을 새로 익힌다. 지난 2월14일 찾아간 서울...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제948호 올겨울 유난히 추웠습니다. 여행업계는 동남아 도시를 찾은 한국 관광객 수가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나투어는 지난해 12월 말 이 업체를 이용한 국외 여행객 13만 명 중 45.9%가 동남아 지역으로 떠난 것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47.1% 늘어난 수치라고 합니다. 이례...
미리 쓰는 부고(訃告)제947호이것은 너무 늦게 도착한 부고다. “내 아내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인 안동 김씨이다. 향년 22살. 그중 8년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아! 당신처럼 현숙한 사람이 중간의 수명도 누리지 못하고 아들도 두지 못했으니, 천도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 믿기 어렵다. 곤궁하던 시절에 나는 당신과 마주 앉아 작은 ...
농담 같은 비명 제947호‘아이 윌 비 백.’ 영화 속 터미네이터는 ‘돌아오겠다’던 유언을 지켰다. 1965년부터 21년여 동안 자신의 이름을 단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했던 미국의 방송인 멀빈 그리핀이 가장 많이 읊은 대사는 “전하는 말씀 듣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이었단다. <제퍼디> <휠 오브...
정말 학교가 이래?제946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아이들에게 문학 시간에 시 한 편이라도 더 읽기 바라던,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하던 선생님은 ‘수능형 학습’이라는 이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