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사람보다 먼저 걸어나오면 안 된다”제983호대충 차려입고 나온 옷이 왠지 신경 쓰였다. 60년 넘는 경력의 디자이너와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워서 두르고 나온 스카프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풀어서 가방에 구겨넣었다. 하지만 마주 앉은 디자이너는 사람의 옷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옷이 사람을 짓눌러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진 ...
아이돌 배우 그룹의 탄생제982호‘서프라이즈’는 5명의 젊은, 또는 어린 남자들이 모인 그룹이다. 서강준, 공명, 강태오, 유일, 이태환 같은 멤버들의 이름부터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모바일 드라마 <방과후 복불복>으로 데뷔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작품에 출연...
옥상, 레드기획 도시의 마지막 미답지제981호10월2일 저녁 7시30분, 해가 저물고 하늘이 깜깜해졌다. 어둠은 낮은 곳 높은 곳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내려앉았다. 서울 종로1가, 술집과 밥집으로 조밀한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이 가게 저 가게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왔다가 쏟아져들어가곤 했다. 번잡함을 뒤로하고 초대받은 13층짜리 건물 옥상에 올랐다. ...
버스는 아무 때나 떠나네제980호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어떡해야 할까. 누구는 틈만 나면 서울 탈출을 궁리하고 누구는 차마 애정을 버리지 못해 서울 구석구석을 유람한다. 격월간으로 버스 노선 하나를 정해 이야기를 만드는 독립잡지 를 만드는 이혜림(22)·이예연(22)씨는 이 도시에 “애증이 있다”. 너무 거대하고 빨리 변화하며 옛것을 ...
꼭꼭 숨어라 명절 사이렌 울린다제979호공부 잘하냐, 취업 안 하냐, 애인 있냐, 결혼 언제 하냐, 애 낳을 거냐, 살이 쪘네 빠졌네…. 친척들은 생애주기별로 잔소리하도록 프로그래밍되기라도 한 걸까.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9월10일, 한 포털 사이트의 핫토픽 키워드에는 ‘추석 때 듣기 싫은 말’이 순위권에 올랐다. 취업 포털 ‘사...
‘오디오환자’들의 오디오‘무도’제978호9월1일 오후 2시 무렵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엘피(LP)바 ‘피터폴앤메리’는 중년의 아저씨들로 가득 찼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도사풍 아저씨를 비롯해 60여 명의 참석자 중 여성은 1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 30대의 얼굴도 보였지만 대부분 40~50대였고 60대 이상 초로의 신사...
순정병맛, 감성변태, 적 같은 예술가제977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고, Mnet <방송의 적>은 끝나고 ‘존님’을 남겼다. <슈퍼스타K> 출신의 훈남, 존박에게 이런 천치 같은 매력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샤이니가 <방송의 적>에 나왔을 때, 살아 있는 비주얼로 증명했듯 존박...
진심으로 궁금하다 승자는 누가 될까제976호 누구는 아버지를 보고, 누구는 신자유주의를 보고, 누구는 여성 캐릭터를 보고, 누구는 미드를 본다.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은 그렇게 다양한 층위를 가졌다. 여기엔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선인도 악인도 없다. 선악이 뒤섞인 인물들.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무엇이 ...
‘머라카노’도 통역이 되나요?제975호 근미래를 그린 영화 <설국열차>에서 기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는 영어를 하지 않는다. 한국어만 사용하는 그는 영어를 쓰는 꼬리칸의 혁명가 커티스(크리스 에번스)와 대화할 때 주머니에서 둥그런 물체를 꺼내 입에 댄다. 번역기다. 남궁민수가 번역기에 대고 한국말을 하면 영어가 나온다....
지는 쪽은 죽는다 랩쟁과 논쟁제974호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제리(톰 크루즈)는 미국 주류 백인사회의 표본적인 남성상이다. 로스쿨 출신의 성공한 스포츠 에이전트인 제리는 어느 날 밤 갑자기 감상에 치우친 제안서를 작성해 배포했다가 회사에서 퇴출당한다. 제안서의 내용은 수익을 줄이고 삶의 본질에 신경 쓰자는 것이다. 제리는 자기 철학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