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카세트제973호비 오는 일요일, 평소 크고 작은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 홍익대 앞 산울림 소극장 인근 도로는 한산했다. 문 닫은 가구점 옆에 유일하게 몇몇 사람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저기인가보다. 모여든 사람들을 지표 삼아 가까이 다가가니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문이 있다....
아트영화냐 블록버스터냐제972호*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소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영화 <설국열차>의 기차가 터널을 지나 맞닥뜨리는 세상도 온통 하얗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기차는 17년째 얼어붙은 풍경...
모텔 검색하는 여자 리뷰 남기는 남자제971호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 ‘MT 간다’는 말은 ‘모텔에 간다’ 는 말의 줄인 말이라고 한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2012년 발표한 논문 ‘욕망의 사회사, 러브모텔’에 나오는 말이다. 그만큼 모 텔에 가는 것이 일상의 일부가 됐다는 뜻이다. 대학생 이민호(24·가명)씨는 스마트폰 애플...
항공여행 앞둔 소심남녀를 위한 안내서제970호 '1시간이 1년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지 난 7월8일 아침, 제주를 출발해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시아나항공 214편 여객기 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던 중 사고가 발생 해 중국인 2명이 사망하고 180여 명이 다쳤다는 안타까 운 소식이 전해...
하루키에게서 오징어 냄새가 난다고?제969호화제의 소설이 출간되기 전 화제의 리뷰가 먼저 있었 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저는 무라카미 작품에 있어 좋 은 독자는 아닙니다. <상실의 시대>도 도중에 읽다가 그 만두었고, <어둠의 저편>도 도중 퇴장, 제대로 읽은 것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에어컨과 냉장고가 멈춘 날제968호 전기를 쓰지 않고 여름을 나는 것은 가능할까. 만성 전력 수급 위기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때이른 더위로 예 비 전력이 급감해 한국전력거래소는 6월에만 12차례 전 력 수급 경보를 예보했다. 서늘한 바람을 내뿜던 에어컨 과 선풍기가 어느 순간 멈춰버린다면, 냉장고가 작동을 그만둬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2...
국경을 넘는일제967호 바다로 국경을 건너고 있었다. 2011년 11월, 말레이시 아 랑카위에서 타이의 리뻬섬으로 가는 길이었다. ‘스피 드 보트’라 불리는 배에 앉아서 바닷물로 샤워를 하는 참이었다. 고속 엔진을 단 작은 배가 파도를 가르자 바 닷물이 끝없이 비를 뿌리듯 얼굴로 몰아쳤다. 어느덧 해 수 샤워도 익숙해질 무렵,...
남쪽으로 튀어제966호 인구 1천만의 도시 서울은 화려한 만큼 번잡하고 거대 한 만큼 압도적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도시에 계속 머 물고 싶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 최 근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남해의봄날 펴냄)이라는 책 이 출간됐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지식노동자들의 피로 도시 ...
당신의 하루살이 역사로 만들어드립니다제964호“5월12일, 뭐했는지 기억나?” 먼 훗날이 지나고는 아니고, 5월의 마지막 날 저녁을 먹다가 물었다. 뒹굴뒹굴하다 토요일 새벽에 잠들어 들국화 노래처럼 <오후만 있던 일요일>도 아니고 ‘저녁만 일요일’을 보낸 지 어언 몇 달. 그날이 그날인 일요일, 뭘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
‘운수’ 좋은 날제965호택시를 탔다. 기사님께 “요즘 어떠시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말이 안 나오죠”. 백미러에 비치는 기사의 이마에 주름이 깊었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 챙겨입은 소매가 긴 셔츠는 종일 마주하는 햇빛 탓인지 누렇게 바래 있었다. “경기 나빠지면 어디서 줄이겠어요?” 서울시는 6월3일을 ‘택시의 날’로 정…